공지영 "`진보`에 염증…86세대 끝까지 믿은 난 어리석었다"

박양수 2024. 1. 2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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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히 지지했던 유명인사에 '배신감'…"'잘못했다' 한마디만 했더라면"
SNS상 설전 벌인 진중권에겐 "미안해 죽겠다" 사과
86세대 끝까지 믿은 반면 보수쪽은 철저히 외면…"난 어리석었다"
"이념잔치 20세기에 끝냈어야…이분법 논리·80년대 구호와 이젠 결별"
"진정한 자유 얻었다…누구 편에도 서지 않고 내 생각대로 말할 것"
지난 15일 경남 하동군 평거리 마을 자택에서 공지영 작가가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하동=연합뉴스]
공지영 작가의 신간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해냄 제공]

공지영(60) 작가가 최근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에세이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해냄)'에서 소위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학생운동권)'에 대한 절절한 반성문을 썼다.

공 작가는 23일 공개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열렬하게 옹호했던 한 사람이 내가 이전까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그런 사람일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상상 못 했다. 꽤 오래 친분이 있었기에 배신감은 더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때 '지킴이'를 자임했던 유명인사를 거론했다.

지난 15일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자택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공 작가는 "욕을 먹으면서도 그를 감쌌던 건 당시로선 나름의 애국이고 희생이었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었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어 "나중에 과오가 드러났을 때 그가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이렇게 실망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이 사건과 관련해 자신과 SNS상에서 설전을 벌였던 진중권 교수에게 "미안해 죽겠다"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공 작가는 지난 2020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지를 놓고 자신과 대척점에 선 진 교수와 설전을 벌였다. 진 교수는 당시 조 장관 임명을 찬성한 정의당을 탈당했다. 이에 공 작가는 진 교수를 향해 "이분이 평소에도 불안하고 힘들다고 한다. 이제 이분 친구들이 이분을 좀 보살펴드렸으면 한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진 교수는 "공 작가 허언증이 심해졌다. 유튜브 그만 보고 트위터 그만하라"고 대응했다.

공 작가는 "그렇게 뒤통수를 맞았음에도 우리 86세대는 그래도 자기가 한 약속은 지킬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믿었던 것이 화근"이라며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본인들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지금의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보수성향 매체의 기사는 아예 읽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종편에 출연한다는 이유로 특정인에게 날을 세웠던 자신에 대해 "얼마나 편향된 사고로 이 모던한 세상을 재단하며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돌아보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공 작가는 "요즘은 금고 이상 징역형 확정시 국회의원 세비를 반납하게 하자는 한동훈의 주장은 아무리 국민의힘이라도 맞는 말이고, 예전 같으면 '박근혜 키즈'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이준석도 옳은 말을 하니 예뻐 보인다고 농담처럼 얘기한다"며 웃었다.

다만, "그렇다고 '보수'로 간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 세대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지지하지 않고 비판적 자세를 취하며 사안별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86 운동권이 국회의원이 되고,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는데도 여전히 낡고 이분법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80년대식 구호를 외치는 이데올로기적 동지들과 결별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소위 '진보적' 발언을 아무렇게나 하면 다수가 되겠지만 말로만 하는 위선자들은 다 싫다"며 "진보, 보수가 아니라 그 앞에 붙는 '합리적', '극단적' 등 수식어가 더 중요하다"고 짚었다.

공 작가는 신간 제목인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그런 자신을 '배신자'라고 낙인찍고 '국힘'이냐고 손가락질해도, 권력에서 멀어지고 소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애들도 다 컸고, 책이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겠다. 바라는 것이 없으니 진정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또한 "누구 편에도 서지 않으니 생각하는 대로 말하면 되고,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그만큼 자제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활발하게 했던 SNS 활동을 접게 된 계기가 있다고 했다. 어느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노신사는 '싸움을 잘하냐'고 묻더니 '이길 수 없으면 싸우지 말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그 순간 "번갯불 치는 것 같은 깨우침을 얻었다"는 공 작가는 그 길로 모든 SNS 채널에서 손을 뗐다고 한다.

어느덧 이순(耳順)을 넘긴 그는 올여름 출간을 목표로 86세대 주인공이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소설 '5월에 죽다'(가제)를 준비 중이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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