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연말, 새해엔 ‘따뜻한 나의 도시’이길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목표 부재한 연말연초 행사들, 온기 나누는 문화 절실
(시사저널=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연말은 1년 중 거리가 가장 화려하게 장식되는 시즌이다. 특히 이번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여전히 코로나19는 우리 곁을 맴돌고 있지만 거리두기나 의무격리 조치가 사라진 2023년의 연말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붐볐다.
연말이 다가왔음을 제일 먼저 실감나게 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건물 외벽을 조명 장식으로 한껏 치장한 백화점들이다. 작년에는 단순히 전구로 불을 밝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벽면 전체를 미디어월로 만들어 한층 섬세하고 동화 같은 이미지를 선보인 곳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담은 거대한 영상은 사람들에게 길을 가다 멈춰 서게 하는 몰입감을 선사했고, 백화점 주변은 이 황홀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그런가하면 대형 쇼핑몰들에서는 마치 유럽의 밤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크리스마스 마켓들이 경쟁적으로 열렸다. 예약을 하거나 장시간 대기줄을 서지 않으면 입장도 쉽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는 특별하게 한해를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완벽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유럽 도시들 방불케 한 서울…연말 수놓은 미디어아트
서울에서는 '윈터페스타'라는 축제가 등장했다. 이름은 새롭지만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 시청광장 스케이트장, 서울빛초롱축제 등 그동안 서울 도심에서 열렸던 겨울 이벤트들을 하나로 엮은 것이다. 눈을 사로잡는 조명 장식들과 감각적인 미디어아트가 겨울밤 서울 도시 한복판을 시끌벅적하게 채워 넣었고, 광화문광장에도 역시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럽에서 겨울철 먹을 음식과 용품들을 시민들이 미리 사둘 수 있도록 초겨울 장이 서던 것에서 유래했다. 무려 13세기 말경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전통이다. 주로 독일어권에서 많이 열렸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지금도 독일 드레스덴, 오스트리아 레오벤, 독일과 국경을 맞닿고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가 대표 격으로 꼽힌다. 도시 중심이 되는 광장에 커다란 트리와 놀이기구가 들어서고 지역 특산품들로 구경거리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가 흉내 내고 있는 딱 그 모습이다.
화려한 도시, 따뜻함도 품을 수 있길
이번 겨울에 국내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 중 눈여겨볼 만했던 사례로 경기도 오산시의 '제1회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었다. 홍보도 대대적으로 해 꽤나 입소문이 났다. 지역주민들에게는 가까운 동네에서 연말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던 추억으로 남았고, 외지인들에게는 '오산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가 됐다.
사실 이것은 오산 구도심 상권을 살리기 위해 기획된 행사였다. 교통이 좋아지면서 사람들이 주변 신도시나 서울로 자꾸만 빠져나가 오히려 지역 내 활기는 잃어버리게 됐던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한 달 동안 오산역 앞 작은 광장에서는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들이 시민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했다. 서울 유명 쇼핑몰의 세련된 크리스마스 마켓에 비하기는 어렵지만, 그 취지만큼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크리스마스의 오랜 의미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하지만 서울의 연말연시 축제들은 시민을 위한 겨울 여가 콘텐츠라는 것 외에 무엇을 목표하고 있는지 아리송했다. 제야의 종 타종행사를 제외하면 모두 특별히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새로운 시도들이다. 지금은 마치 대한민국이 퍼블릭 미디어아트의 세계 최강자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의지만 엿보인다.
서울시는 상업시설들처럼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지역민 유출과 상권 활성화를 고민해야 하는 중소도시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한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을 겪고 있으며 치유해야 할 상처들도 많다. 모두가 서로에게 행복을 비는 연말연초, 목적 없는 화려함보다는 따뜻한 정과 마음을 나누는 겨울 도시 문화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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