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거부하게 만드는 선생님의 수업···파멸로 치닫는 맹신[리뷰]
부유층의 위선 풍자
유럽의 한 ‘엘리트 학교’에 젊은 영양 교사가 부임한다. 학생들의 영양 섭취 개선을 위해 고용된 그의 이름은 ‘미스 노백’(미아 바시코브스카). 단정한 얼굴의 미스 노백은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으로 부유층 자녀인 이 학교 학생들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영화 <클럽 제로>는 미스 노백의 첫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이 왜 그의 영양 수업을 듣게 됐는지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아이들이 말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구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체지방을 줄여 트램펄린을 더 잘하기 위해 듣는다. 어떤 아이는 소비를 조장하는 식품업계와 상업주의에 저항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었고 어떤 아이는 전액 장학금이 목표다.
미스 노백은 ‘의식적 식사법’(Conscious Eating)이라면 이 모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의식적 식사란 눈앞의 음식을 고도로 ‘의식하며’ 먹는 것이다. 음식 앞에서 깊게 심호흡을 하고 작게 자른 음식을 집중해 먹는 데서 출발한다. 마치 이 세상에 나와 이 음식만 있는 것처럼. 이렇게 먹다 보면 신체 스스로 정화와 강화를 시작해 건강과 학습 능력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게 미스 노백의 주장이다.
미스 노백에게 매료된 아이들은 의식적 식사법을 실천해나간다. 실천 초기 집중력 향상이나 체지방 감소 같은 효과를 본 아이들은 의식적 식사에 박차를 가한다. 경쟁적으로 식사량을 줄여 ‘새모이’만큼 먹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포크로 음식을 썰어댈 뿐 입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굶는 것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됐다. 먹지 않는 행위를 통해 계급 차이와 식사의 불평등을 무력화한다는 그럴듯한 논리부터 지구가 멸망할 때 마지막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까지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미스 노백은 미소로 화답한다.
하지만 식사 거부의 결과는 뻔하다. 얼굴은 잿빛이 되고, 당뇨가 심해진다. 몸무게가 심하게 줄어 트램펄린 위에서 뛸 수 없게 된다. 이탈하는 몇몇에게 남은 아이들은 손가락질을 한다. “쟤넨 너무 편협해. 이건 믿음의 문제라고.”
영화는 유럽 사회 부유층의 위선을 비웃듯 아이들의 부모를 벌준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정작 자녀들에게는 절제를 가르치는 이들의 행태를 풍자한다. 근사한 논리를 가져다 대는 아이들의 마음 깊숙한 곳 청소년기의 불안과 인정 욕구가 있음을, 부모는 보지 못하지만 미스 노백은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무서우리만치 차가운 이야기지만 화면은 내내 화사하다. 샛노란 색의 교복, 온통 보라색인 방, 초록빛의 기숙사 등 알록달록한 화면은 섬뜩한 이야기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좌우 대칭적인 프레임이나 움직임이 적은 카메라도 관객의 불안을 고조시킨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감독인 제시카 하우스너는 독일의 구전 동화인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 영화 <스토커>(2013)로 알려진 배우 미아 바시코브스카가 미스 노백을 연기했다. <스토커>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연기한 바시코브스카는 이번 영화에서 친절한 얼굴 뒤 뒤틀린 믿음으로 아이들을 파멸로 이끄는 인물로 변신한다.
섭식 장애와 관련한 장면이 포함돼 있어 관람에 주의가 필요하다. 24일 개봉. 러닝타임 110분.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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