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만 견디면 두통에서 해방"… 결전의 날이 왔다
대학산악부 재학생들의 남미 최고봉 6,962m 등반기
캠프3에 있던 선배들이 해가 뜨자 캠프2로 모두 무사히 내려왔다. 선배들의 하산도 걱정이었지만, 사실 내 코가 석자였다. 이틀 내내 머리가 깨질듯 아팠다. 벽래 선배가 함께 내려갔다. 신기하게도 고도가 낮아질수록 컨디션이 점점 회복되었다. 그렇게 울면서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 길을 다시 올라와야 할 두려움과 다시 오면 적응하여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날씨가 좋지 않다. 1월 6일부터 정상에는 시속 80~100km의 강한 바람이 예보되어 있다. 이러면 정상 공격을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빠듯하다. 14일까지 호르코네즈로 돌아가야 한다. 날짜를 초과하면 벌금이다.
1월 4일, 등정을 마친 선배들은 오늘 떠난다. 곧바로 귀국이다. 선배들은 남아 있을 우리를 걱정하며 자신의 장비를 챙겨주었다. 립밤부터 침낭, 장갑, 이중화까지 내어주셨다. 비록 선배들은 떠나지만 선배들의 분신 같은 장비가 있어 옆이 허전하지 않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 베이스캠프 생활이 예상보다 길어진다. 그동안 침대에서 자고, 따뜻한 물로 씻는 모습을 상상하며 빨리 텐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 돌이켜보니 어느새 베이스캠프 생활에 편안해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텐트 생활도 일주일이 넘었다. 산에서 지내려면 부지런해야한다. 강한 햇볕에 피부가 타지 않으려 부지런히 썬크림을 발라야한다. 밥 먹고 뒷처리하고 돌아서면 다음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밤낮 온도 차이가 커 더우면 벗고 추우면 껴입어야한다.
처음엔 불편하고 귀찮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이젠 밥하고, 물 끓이고, 씻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텐트에서 자는 생활이 익숙해졌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양치를 하다 고개를 들어 별을 보고, 외국인들과 인사하고, 무슨 일에도 웃음부터 난다. 산에 다시 돌아올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1월 5일, 며칠 동안 잠잠하던 텐트가 다시 바람에 시끄럽게 운다. 한동안 편하게 잠을 자나 했더니 다시 뒤척이게 생겼다. 베이스캠프에서 자면 항상 꿈을 꾼다. 요즘은 여기가 남미인걸 까먹을 정도로 자기도 한다. 깨면 집인 줄 알았는데 낯선 풍경에 깜짝 놀란다.
1월 6일, 등반을 시작할 짐 싸기만 하다가 시간이 다갔다.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주어진 날짜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정상 시도를 할 수 있는 날이 자꾸 뒤로 밀린다. 1월 7일, 오늘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짐 싸기만 하다가 시간이 다갔다. 날짜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정상 시도를 할 수 있는 날이 계속 밀린다. 그나마 내일은 날씨가 괜찮은 편이다. 긴 베이스캠프 생활을 접고 정상을 위한 일정이 다시 시작된다. 고소증세와 싸워 이겨보자!
1월 8일, 다져놓은 벽돌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쌓아올릴 차례다. 오늘 올라가면 5일 동안은 정상 시도 전까지 내려올 수 없다. 지겹다고 생각했던 베이스캠프도 이젠 집같이 편안히 느껴지니 얼른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 올라가면 와이파이나 데이터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들었다. 마침 한국의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출발 전 마지막으로 '이제 올라가면 5일 동안 연락이 안 돼. 엄마한테도 전해줘'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등반을 시작했다.
캠프2로 향하는 길이다. 두 번째다. 전처럼 고소 증세가 심할지 걱정되었다. 무수히 올라오는 걱정을 억누르고 한 발짝씩 내딛었다. 우리 말고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1월 9일, 며칠 내내 날이 좋지 않다. 우리처럼 날씨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팀이 많다. 그나마 괜찮은 11일과 12일 새벽 중에 캠프3에서 정상 시도를 해야 한다.
등반 허가 기한 때문에 14일까지 호르코네즈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아침부터 조현세 대장은 생각이 많아 보인다. 예보상의 날씨가 좋지 않아 정상 시도를 할지 말지도 의문이다. 이대로 정상 시도조차 못해보고 캠프3에서 짐만 챙겨서 내려와야 할 수도 있다.
날씨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상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팀도 있다. 그 팀원 중 베이스캠프에서부터 알던 인도 친구도 있었다. 간다며 우리 텐트에 인사하러 왔다. 참 밝던 얼굴이 인상 깊었다. 정상 시도도 못하고 캠프2에 내내 있다가 돌아서는데도 어두운 구석이 없었다.
앞서 등반에 나섰던 OB팀 선배 중에는 등정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으나, 역시 표정에 구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인도 친구든 졸업생 선배든 물어보고 싶었다. 아쉬움과 후회가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아쉬움과 후회를 어떻게 잠재울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오랜 고민 끝에 대장이 "11일 정상 공격"를 결정했다.
1월 10일, 캠프2에서 캠프3은 2~3시간만 오르면 도착할 수 있다.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없어 배낭에 장비를 쑤셔 넣었다. 현세 대장과 내가 먼저 선발대로 출발한다. 하지만 치고 나가는 대장님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포기하고, 혼자 천천히 산행하기로 했다.
멀리 나를 제쳐간 호선이형과 수지 그리고 현세 대장이 보인다. 20일 가까이 원성 생활을 하다보니 멀리서도 우리 대원인지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대원들이 가는 방향이 나뉜다. 문득 멍하니 서서 어디가 맞는 길이지 가늠하다, 누가 봐도 고수의 향기기 폴폴 나는 아저씨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왼쪽은 바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캠프 베를린을 지나 돌아가는 쉬운 길이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직등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뒤에 있던 기빈이형에게도 따라잡혀 막바지엔 같이 올랐다. 슬슬 발과 손이 시리다. 발과 손을 꼼지락 대며 올랐다. 햇볕은 따갑다. 무전기로 순차적으로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거의 다 왔다는 소식에 쉬던 엉덩이를 떼어 다시 걸었다. 고도를 높일 때마다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고개를 드니 다른 산의 능선이 훤히 보인다. 비행기에서만 보던 산맥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 남미 최고봉이라 게 실감 난다. 헐떡거리는 숨을 견디고 운행을 하니 어느새 또 다른 캠프에 도착했다. 새로운 캠프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설렘은 오늘로써 끝이다. 6,000m에 가까운 높이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몇 시간만 견디면 지긋지긋한 두통에서 해방이야."
머리가 아프고 기운도 없다. 제발 '몇 시간만… 몇 시간만 버티자'를 되내였다. 비화식 발열식품인 전투식량을 먹었다. 목이 막힌다. 며칠 먹지도 않았는데 냄새도 역한 것 같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다. 내일 힘을 내기 위해 먹어 해치워버렸다.
생각 보다 위험한 구간이 많아 정상 공격 때는 두 명의 현지 가이드를 쓰기로 결정했다. 가이드는 "내일 새벽에 출발 할 테니 자기 전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라"는 잔소리를 했다. 자기 전 가이드 텐트로 기빈이형과 놀러갔다. 혼자 있으면 물을 안 마실 것 같았다. 덕분에 이야기를 나누며 물과 간식을 잔뜩 먹었다. 따뜻한 물을 좀 마셔서 그런지 두통이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컨디션이 꽤 괜찮아진 것 같다. 내일 잘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다. 드디어 정상이다. 결전의 날이 내일이다. <다음주에 계속>
글 사진 여정윤 부산 동아대산악회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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