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옳다’ 확증편향 만연한 세상에 대한 칸의 경고 [엄형준의 씬세계]
피리부는 사나이서 영감 ‘클럽 제로’… 잘못된 믿음의 위험 조명
어떤 게 진실인지 의심될 때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통통 작은 공 하나가 계단을 굴러 내려오고, 여자를 바라보던 개가 그 공을 입에 문다. 영화 ‘추락의 해부’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이야기를 관통하는 암시를 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런 영화에서 관객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흐름은 의외의 반전과 사건의 명쾌한 해결이다. ‘추락의 해부’는 절반쯤 이런 흐름을 따라가는 듯하지만, 추리물이나 법정 드라마에서 가질 수 있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진실을 의심하게 한다.
초반은 제목의 문자 그대로 ‘추락’ 사건이 주제지만,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영화는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대로 ‘관계의 추락’을 그려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들 다니엘은 몰랐던 엄마와 아빠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고 처음으로 엄마의 진심을 의심하게 된다. 법정에서 검사(앙투안 레나츠)는 물증이 없음에도 산드라의 범죄를 확신하는 듯, 약점을 찾아내 강하게 압박한다.
트리에 감독은 영화 속 검사에 대해 “악역이긴 하지만 매우 매혹적이고 사악하며 화려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며 “법정을 마치 전투장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검찰의 문명화한 폭력을 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법정에 앉아 있는 배심원과 같은 역할이다. 트리에 감독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산드라가 정말 범인인지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관객에게 우리가 믿는 진실을 의심하도록 하고, 그러는 동안 상처받고 피폐해지는 영혼을 다룬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는 흥미로운 서사에도 긴 러닝타임과 자막으로 처리되는 쉴 새 없는 대사로 단박에 다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진실에 대한 궁금증과 영화 안에 숨겨진 의미는 극장 불이 켜진 후 다시금 영화를 돌이켜 보게 한다.
최고급 시설에서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의 새로운 영양 교사로 임명된 ‘미스 노백’(미아 바시코프스카)은 몇몇 뛰어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습 능력을 키우는 ‘의식적 식사법’을 가르친다.
하우스너 감독은 “미스 노백과 아이들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면서 “그들은 자신들만의 진실을 갖고 있다. 그들 모두 굶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의 구전동화인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두 작품을 포함, 국내에 개봉한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작품 중에선 이처럼 자기가 한번 옳다고 생각한 것을 바꾸지 않는 ‘확증편향’에 대한 경고를 담은 영화가 유독 눈에 띈다.
현재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에서 높은 순위를 이어 가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역시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 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을 의심하게 한다. 영화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확신이 지배하고 있는 스크린 밖 세상에 경고에 메시지를 전한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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