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삼달리' 배명진 "선생님 같은 작품이었죠…'나'를 잃지 않고 연기할래요" [MD인터뷰](종합)

강다윤 기자 2024. 1. 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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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배명진. / 클로버컴퍼니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자유'에요. 내가 자유로운 만큼 내 삶을 책임지고, 자유롭게 연기하는 만큼 그 대가를 책임지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주 자유롭게 연기하고 싶어요. 늘 나답게 살아가면서 명확하고 자유롭게."

배명진은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만나 종합편성채널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극본 권혜주 연출 차영훈)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웰컴투 삼달리'는 개천에서 난 용 같은 조삼달(신혜선)이 어느 날 모든 걸 잃고 추락한 뒤, 개천을 소중히 지켜온 조용필(지창욱)과 고향의 품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며 사랑을 찾는 청정 짝꿍 로맨스. 배명진은 극 중 제주 기상청의 관측관이자 '독수리 오형제'의 유일한 유부남 차은우 역을 맡았다.

이날 배명진은 "한 8개월가량 찍었다. 시작한 지가 진짜 엊그제 같은데 더울 때 시작해서 사계절 지나서 벌써 춥다. 시간이 너무 무색하게 흘러간 작품이어서 너무 아쉽고 벌써 끝난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며 "나한테는 참 여러모로 선생님 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끝나는 게 마냥 좀 아쉽고 섭섭하다"라고 종영소감을 밝혔다.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메인 포스터. / JTBC

'웰컴투 삼달리' 마지막 회는 수도권 13.1%(이하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 전국 12.4% 시청률을 기록, 토일드라마 1위 자리를 지키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는 첫회 5.2%로 시작해 2배 이상 뛰어넘은 결과다. 이에 대해 배명진은 "물론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너무 큰 기대는 안 하려고 했다. 당연히 기대한 만큼 실망하면 아프니까"라면서도 "차영훈 감독님의 능력과 권혜주 작가님의 집필력, 배우들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잘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배명진은 '웰컴투 삼달리'의 인기를 하루하루 몸소 체감 중이다. 약속 시간에 1시간 일찍 도착해 PC방에 갔더니 바로 뒷좌석의 어떤 아저씨 '웰컴투 삼달리'를, 배명진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모임에 나가서도 길거리에서도 '어, 차은우다!' 하는 이들이 생겼다. 물론 그전에도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많았던 적은 처음이다. '웰컴투 삼달리'의 힘일터다.

"친적들까지 연락이 온 건 처음이에요. 엄마는 물론 제 모든 작품을 다 보셨지만 '아들, 매주 나한테 이런 재밌는 시간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진짜 잊고 살았던 친척들까지 연락이 왔어요. 스마트폰이 아니신 분이 '명지나 삼다니' 이런 식으로 오타까지 나시면서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어른들이 봐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구나' 싶었고 너무 감사했어요."

배우 배명진. / 클로버컴퍼니

배명진이 연기한 차은우는 삼달리가 낳은 명물, 다섯 명의 동갑내기 조삼달, 조용필, 부상도(강영석), 왕경태(이재원)와 함께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다. '독수리 오형제' 중 가장 순둥순둥하고 유한 매력의 차은우는 깊은 마음 씀씀이와 섬세함의 소유자다. 가슴 한 편에는 이루지 못한 웹툰작가라는 꿈에 대한 갈증과 아쉬움도 품고 있다.

이에 대해 배명진은 "초반에는 개인적으로 은우의 톤을 잡는 게 힘들었다. 아무래도 영화 '시민덕희'나 전작 '최악의 악', '택배기사'도 캐릭터들이 다 선이 굵었다. 진하고 폭력적이고 명확한 색깔들이 많았다"며 "은우는 되게 둥글둥글하고 순둥순둥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특징이 없고 중재를 맡고, 어른스럽더라"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음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이 맛에 약간 심심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참 많이 했다. 또 아무래도 초반에는 욕심이 있으니까 도드라져 보이고 싶고, 장난도 치고 싶었다. 그런데 은우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옆에서 왕경태가 떠들면 중재도 해야 하고"라며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관찰했는데 자기주장이 강한 친구가 있고 묵묵히 따라오는 친구들이 있더라. 그런 친구들을 보며 은우의 포지션이 저쯤이지 않을까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우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조금 더 어른스러운 거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네가 좋다면 이거 해도 괜찮아' 이런 사람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니까 조금 더 많이 편해졌다"며 "나는 실제로 은우와 성격이 많이 비슷한데 한 가지 다른 건 모르는 척을 못한다. 만약 나라면 상도에게 진작에 '고백이라도 해라'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은우는 한참 기다려주고 조금 더 각자의 삶을 존중해 준다. 실제 나보다 어른스러운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배우 배명진. / 클로버컴퍼니

배명진에게는 차은우와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부산 출신의 배명진 역시 차은우처럼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차은우와 달리 초반 운이 좋았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한 배명진은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부지런히 오디션을 봤고 3주 만에 캐스팅이 됐다. 그때부터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며 몇 년간 작품이 끊이지 않았고 운 좋게 '쭉쭉쭉' 올라갔다.

하지만 배명진도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서 본격적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시작한 뒤 심한 매너리즘에 빠졌다. 연기적인 매너리즘에 안 좋은 개인사까지 겹치자 연기를 그만두고, 모든 것을 접고 부산으로 돌아가는 건 어떨지 고민에 빠졌다. 배명진이 연기를 시작하고 처음 해본 생각이었다.

배명진은 자신의 매너리즘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누구나 다 좋은 역할을 맡고 싶지 않나.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때는 조금 자리를 잡은 상태였는데 매체로 넘어오면서 신인이니까 단역을 많이 했다"며 "차곡차곡 다시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난 언제까지 이런 역할만 해야 할까' 이런 열등감이 자리 잡았다"며 "이 생각이 점점 부풀어 오르더라. 스스로한테 자꾸 실망을 하게 되는 거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드니까 '나는 여기까지 인 걸까'하고 딱 나의 끝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배우 배명진. / 클로버컴퍼니

"매너리즘 극복은, 지금 소속사 안태호 대표님이 해주신 말이 있어요. '너는 누구인가' 어떤 의미인지 아냐고 '네가 진짜 누구인지 알아' 하시는데 말의 의미조차 모르겠더라고요. 대표님이 '너도 네가 누군지 모르는데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게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한번 찾아봐 너를'이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제가 누군지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나'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여러 고민 끝에 배명진은 모든 것을 반대로 해보기로 했다. 사소한 습관부터 모두 반대로 바꿨다. 왼손으로 밥을 먹고 매일 집에 가는 길까지 바꿨다.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보고 싫어하는 사람도 만났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이걸 왜 싫어했지' 싶을 정도로 좋은 것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가졌던 단단한 편견과 굳게 닫아둔 문을 깨달았다.

그는 "내 안에 있는 벽을 다 깨부수려 했다. 실제 생활에서 노력하다 보니 성격도 변하기 시작했다. 삶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고 그렇게 연기를 하니 오디션에 임하는 마음 자체가 아예 달라졌다"며 "스스로를 좀 포장하고 꾸미기도 했는데 '최대한 나답게'라는 마음으로 단점까지 다 보여드리고 나왔다. 이상하게 그렇게 하니 그때부터 잘 되더라. 역할도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배우 배명진. / 클로버컴퍼니

과거 한 인터뷰에서 배명진은 '사실 어릴 때는 스타가 되고 싶었는데 점차 성장하며 그냥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다'며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은 마음을 전한 바 있다. 그 사이 시간이 조금 지났고, 어느새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연기에 대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배명진의 마음 가짐은 그때와 조금 달라진게 있을까.

배명진은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어릴 때는 속도가 참 중요했다. 누구나 원하는 지점에 빨리 가고 싶어 하고 조금 더 빨리 도달하고 싶지 않나. 나도 빨리 성공을 이루고 싶었다"며 "지금은 그 속도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가치관이나 연기관이 흔들리지 않고 나를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웰컴투 삼달리'가 그 방향성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정말 선생님 같은 작품이에요. 저는 은우가 여태 맡았던 역할 중에 가장 힘들었거든요. 단순하고 직관적인 표현은 잘해왔는데 은우처럼 절제되고 안으로 내공이 있어야 하는 역할이 너무 어려웠어요.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공부도 관찰도 고민도 많았어요. 반성도 많이 하고 많이 깨닫게 준 작품이라 도움이 많이 됐어요."

배우 배명진. / 클로버컴퍼니

'웰컴투 삼달리'는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맞이해다. 그리고 배명진은 2024년을 멋지게 시작하게 됐다. 올해 목표를 묻자 배명진은 "거창한 목표가 따로 있지는 않다. 어느 현장이건, 어느 자리건 나답게 살자는 게 올해의 목표라면 목표일 수 있겠다"며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주변 환경이나 타인에 의해 나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최대한 나답게 살고 싶다"라고 답했다.

"제 인생 영화가 '달콤한 인생'이거든요. 그런 진한 느와를 좋아해요. 아주아주강력한 캐릭터, 진한 캐릭터를 죽기 전에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정반대로 재밌는 걸 아주 좋아해서 약간 '병맛' 감성 가득한 작품에서 재밌는 연기도 해보고 싶고요. 예능이요? 하하, 너무 좋죠. '전지적 참견시점'이나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 예능도 기회가 된다면 한번 해보고 싶어요. 나는 '나'니까 '나'를 못 보잖아요. 나의 일상과 패턴이 떨어져서 보면 어떻게 보일지가 너무 궁금하거든요. 진짜 너무너무 궁금해요."

배우 배명진. / 클로버컴퍼니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배명진에게 혹시 미리 준비한 이야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처음 배명진은 자신의 MBTI가 ENFP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자 배명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제가 영화 '프리즌' 찍을 때 한석규 선배님이 해주신 조언이 있었어요. '명진아, 한 계단 씩 올라가라. 어떤 역할을 맡아도 그거보다 조금 더 잘해라. 그러면 그다음에 조금 더 큰 역이 올 거다. 그다음에 또 조금 더 좋은 배역이 올 거다. 한 계단 씩 차근차근 올라와라. 그래야 튼튼하다' 하고. 요즘 가슴으로 느끼고 있고 벽돌 한 장 한 장 올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밟고 있어요. 뵌 지 너무 오래됐는데 꼭 '저 한 계단, 한 계단 밟아서 선배님 앞에 연기자로 서있고, 계속 올라갈 겁니다'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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