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지사 당선무효 위기 넘겼지만…선거운동은 '구태'
'속 빈 강정' 상장기업 협약식
숫자 오락가락 허술한 지지선언
"낡은 선거운동 방식 바뀌어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영훈 제주지사가 가까스로 당선무효형을 면했다. 7개 혐의 중 사전선거운동 혐의만 유죄가 나왔고, 이마저도 재판부가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지 않아서다. 오 지사가 당선무효 위기를 넘겼지만, 재판에서 드러난 선거운동 과정은 '구태'에 가까웠다.
오 지사, 당선무효형은 면했지만…
지난 22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 지사에게 벌금 90만 원을 선고했다. 선출직 공직자가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화 되는데 당선무효형을 면한 것이다.
하지만 선거운동 최측근인 정원태 제주도 서울본부장과 김태형 대외협력특보는 각각 벌금 500만 원과 벌금 400만 원을 받았다. 형이 확정되면 공직에서 물어나야 하는 형량이다.
오 지사의 혐의는 △사전선거운동 △직무상 행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거래상 특수한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법인의 자금으로 정치자금 수수 △정치자금법에서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 수수 △4개 단체 지지선언 관련 불법 경선운동 △제주대교수 지지선언 불법 경선운동이다.
7개 혐의 중 사전선거운동 혐의만 유죄가 인정됐다. 나머지 혐의에 대한 무죄 이유는 오 지사가 관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서다. 선거운동을 도운 정원태 서울본부장과 김태형 대외협력특보는 사전선거운동과 4개 단체 지지선언 관련 불법 경선운동 혐의에 대해 유죄를 받았다.
사건으로 따지면 크게 두 2가지다. 재작년 6·1지방선거 당시 오 후보의 핵심공약인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협약식 사건'과 '더불어민주당 제주지사 후보 당내경선 지지선언 기획사건'이다. 오 지사가 대부분 무죄를 받았다 하더라도 선거운동 최측근들은 두 사건 관련 유죄를 받은 것이다.
'속 빈 강정' 상장기업 협약식
오영훈 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 법정에서 드러난 2022년 6·1지방선거 오영훈 후보 캠프의 선거운동 과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재판부도 선고 공판에서 일목요연하게 이를 지적했다.
먼저 사전선거운동 혐의가 인정된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협약식에 참여한 업체는 수도권업체 4곳과 제주업체 7곳 등 모두 11곳이다. 마치 상장 가능성이 있는 제주업체들이 경쟁력 있는 수도권업체와 업무 협약식을 맺는 듯한 행사였지만, 그 속을 뜯어보면 '속 빈 강정'과 같았다.
도내 업체 일부는 1인 카페에 불과하거나 현재 폐업한 곳도 있다. 특히 대표가 사기사건으로 수사 받기도 했다. 상장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수도권 업체와도 연관성이 없던 것이다.
재판부는 "참여한 제주업체 면면을 보면 상장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수도권 업체와도 상호 연관성이 없다. 당시 협약식 분위기를 보면 오 후보가 핵심공약인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공약을 제대로 추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 관련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해 홍보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오 후보의 핵심공약인 만큼 신중했어야 하지만, 졸속으로 추진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선거 국면에서 실적 홍보에 급급했던 모습이다. 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전달됐다.
지지선언 숫자 오락가락 '허술'
민주당 제주지사 후보 당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단체 지지선언도 문제였다. 당시 상대 후보 지지선언이 잇따르자 오 후보 선거사무소 관계자들이 지지선언을 기획했다고 법원은 봤다.
'121개 직능단체 지지선언' '2030제주청년 지지선언' '촛불백년 서귀포이사람 지지선언'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직원 지지선언' 모두 오 후보 선거사무소 관계자들이 관여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최측근인 정원태 본부장과 김태형 특보 모두 지지선언문 초안을 작성해주는 등 유죄를 받았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은 자발적이어야 하지만, 선거사무소가 관여했다는 것이다. 특히 지지선언 숫자가 오락가락하거나 그 수를 제대로 세지 않는 등 허술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경선 상황에서 지지선언을 주도한 사람들이 경선사무소 내부자이거나 이에 준하는 사람들이었다. 지지선언문 작성 과정도 불투명하고 초안 작성도 경선사무소가 주도했다. 마치 도민들 사이에서 오 후보 지지층이 두텁다는 인식을 만드는 등 계획적 선거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주민자치연대 좌광일 사무처장은 "지지선언은 원래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의견 개진이다. 선거 과정에서 경쟁이 심화하면 서로 세 과시 수단으로 악용된다. 숫자를 부풀린다거나 과도하게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넣는다든지 세 과시용으로 매몰된다. 낡은 선거운동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협약식도 유무죄를 떠나서 상장기업 육성한다는 공약 내용이 유권자의 피부에 와 닿지 않으니깐 보여주기식으로 한 거다. 앞으로는 공약의 구체성, 실현 가능성을 점검해서 유권자들에게 제시하고 공약 신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운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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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 고상현 기자 kossa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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