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일하는 알코올중독자’가 많은 나라”

서혜미 기자 2024. 1. 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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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다른 정신건강 문제보다 심각하지만, OECD 국가 중 알코올 정책 최하위”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이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중독정책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대부분 남루한 행색의 장노년일 것이다. 제대로 된 직업과 고정 수입처도 없기에 술을 밤낮으로 마신다. 때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주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피해를 끼치고, 혼자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의지가 박약해 언제 어디서나 술 냄새를 풍기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 미디어가 흔히 재현하는 알코올중독자의 모습이다.

현실은 통념과 거리가 멀다. 전형은 알코올중독자의 극소수만을 설명한다.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교수)은 “한국은 이른바 ‘일하는 알코올중독자’가 많은 나라”라고 말했다. 이들은 번듯한 직장에서 멀쩡하게 일하며 성취를 이뤄낸다. 가정생활도 안정적으로 꾸려나간다. 겉으로 봐선 일상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기에 이런 ‘고기능’ ‘고도적응형’ 알코올중독자는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2024년 1월5일, 국내에서 중독 연구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이해국 이사장을 가톨릭의대 중독정책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처럼 술로 인한 문제에 허용적인 문화를 가진 곳은 다른 나라에 비해 문제 발견 시기가 좀 늦어지는 것뿐, (이들이) 중독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술 먹는 패턴이 문제

—사회적 음주와 알코올사용장애를 가르는 기준이 뭔가.

“사람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점이 ‘도대체 얼마나 먹어야 알코올중독, 알코올사용장애냐’는 것이다. 알코올사용장애는 알코올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술을 먹는 패턴(행태)의 문제로, 조절력이 상실되고 세상 어떤 활동보다 술을 마시는 활동이 우선시되는 질환이다.

예컨대 전날 과음하고 지각하거나, 몸을 다치거나, 분노조절이 안 되는 등 기능과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데도 술을 줄이거나 끊지 못하면 중독이라 볼 수 있다. 사람은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능력이 있다. 그런 능력이 의도치 않게 떨어진 상태가 모든 중독의 핵심적 진단 기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진단에 대한 민감성이 낮은 편이다. 술을 마시고 다치거나 돈을 쓰는 일, 지각하는 일을 ‘누구나 있을 수 있는 무용담’ 정도로 취급한다.”

—술에 취해 저지른 행동을 후회하고, 몇 달 동안 술을 마시지 않다가 다시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도 조절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나.

“술을 마신 뒤 실수하거나 다쳐서, 혹은 건강이 좀 나빠져서 한두 달 안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술을 많이 마셨던 사람들은 다시 먹기 시작하면 또 이전 패턴으로 돌아간다. 이들의 뇌는 알코올과 관련한 인지적 요인이 거의 고정됐다고 보기 때문에, 술이 다시 들어가면 과거에 학습됐던 것이 활성화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술을 마셨거나 여러 사람과 어울릴 때 술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회로가 활성화하면, 결국 술을 안 마시려 했던 결심을 능가하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알코올사용장애 수준으로 술을 마셨던 사람이 ‘단주해야 하지, 조절 음주를 하는 건 쉽지 않다’고 하는 이유다. 한번 돌아가기 시작한 중독 회로는 조건반사와 같다. 과거에 술을 마셨던 조건 중 하나라도 성립되면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술을 마시는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2024년 1월7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 위스키 판매대에 다양한 술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30대 여성, 알코올사용장애 유병률 남성 앞서

—술을 매일 마시지만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전에 술 한두 잔씩 마시는 사람도 알코올사용장애로 볼 수 있을까.

“현재 패턴만 있고 문제는 생기지 않은 상태다. 기본적으로 일상생활 기능에 문제가 없다는 측면에서 아직 알코올사용장애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술을 계속 마시다보면 언젠가는 기능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내성이 생겨서다.

화학물질이 들어오면 뇌세포에선 그 화학물질과 반대되는 반작용이 생긴다. 이전과 똑같은 알코올의 진정 효과나 평안한 효과를 누리려면 술의 양도 계속 늘어나야 한다. 습관이 되면 내성이 생기고, 내성이 생기면 술을 먹는 양과 횟수가 늘어나기에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다. 다만 한국처럼 술로 인한 문제에 허용적인 문화를 가진 곳은 다른 나라에 비해 문제 발견 시기가 좀 늦어질 뿐이지, 실제로 중독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수년 전부터 20·30대 여성의 음주율이 늘어나는 것을 경고해왔다.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전세계적으로, 특히 동양권에서는 여성의 음주율이 남성보다 낮았다. 그래서 알코올성 간질환, 음주로 인한 문제는 여성에게서 적게 나타나는 게 상식이었다. 남녀 차별적 사회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여성의 음주와 관련해 환경적 보호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전통 규범이 모호해지면서 남성의 음주 문화가 여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주류회사들은 소주의 도수를 낮추거나 향을 넣는 등 젊은 여성을 마케팅 목표로 삼았다. 월간 음주율이나 월간 폭음률 추이를 봐도 남성은 이전과 비슷하거나 감소하는 반면, 여성 음주는 약 10년 전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선 30대 여성의 1년 알코올사용장애 유병률이 남성을 앞지르는 이변이 생겼다. 30대에서 알코올성 간경변 발생률도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다. 여성은 똑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남성보다 알코올중독이나 다른 장기 손상이 올 가능성이 적게는 두 배, 많게는 다섯 배까지 높다.”

알코올사용장애 1년 유병률과 20대 월간 폭음률.

사회환경적 요인이 40~50% 좌우

—다른 나라는 알코올과 관련해 어떤 정책이 있나.

“도수에 따른 최소가격제 같은 것이 있어, 상대적으로 독주의 가격이 비싸진다. 결국 음주 문제는 혈중 알코올 농도에 따라 결정되고, 이는 상당 부분 독주를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주류 가격을 올리면 고도주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서 음주 문제를 예방할 수 있고, 거기서 걷은 세금으로 음주폐해 예방사업에도 쓸 수 있다. 또 공공장소 음주 금지는 대부분 나라가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부 시도하지만 제대로 하고 있진 않다.

다른 나라에서 다 하는데, 한국에서 유일하게 하지 않는 게 있다면 ‘주류 가용성 제한’이다. 술을 파는 시간, 술을 팔고 먹는 장소에 대한 제한이 하나도 없다. 미국만 해도 맥주와 와인은 슈퍼마켓에서 팔지만 고도주는 지정된 주류판매점에서 판다.

알코올 관련 문제는 사회환경적 요인이 40~50% 좌우한다. 연구 결과를 보면 그 지역에 술 판매점이 얼마나 많은지, 알코올 관련 규제가 얼마나 엄격한지에 따라 음주로 인한 건강 악화, 사고, 사망 지표가 감소하는 것이 나타난다. 알코올은 중독성 물질이고 1급 발암물질이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으면 중독성 물질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한없이 많이 먹을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문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가 선량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하므로 각 나라 정부들은 적절한 사회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선진국이 주류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묻고, 마시게는 하되 문제가 덜 발생하도록 다양한 알코올 정책을 수립해 실행하는 이유다.”

음주예방사업, 16년 전보다 예산 적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의 알코올 정책은 예방보다 이미 문제가 생긴 개인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는 듯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알코올 정책은 최하위다. 사실 개인을 치료하는 정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치료받고 싶으면 병원에 가라’고 하는 걸 치료 정책이라 볼 수 있을까? 그건 국가가 하는 게 아니라 병원이 하는 일이다.

알코올사용장애로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실제 치료받은 비율은 10%도 되지 않는다. 알코올중독은 사회적 편견이 강한데다, 질병이라는 인식이 낮다. 인식 개선 활동과 치료 지원이 따라야 하지만 이런 정책이 없다. 중증 조현병 같은 경우 지역사회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사례 관리를 한다. 하지만 중독은 그런 역할을 하는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전국에 50여 개밖에 없다.

음주폐해 예방관리사업의 예산은 16년 동안 더 감소했다. 2008년 예산이 23억5800만원이었다. 2011년 14억6천만원으로 줄어든 뒤 14억원 안팎의 예산을 유지하다, 2023년에 12억5500만원이 됐다. 또 2018년 보건복지부가 별도의 ‘음주폐해 예방실행 계획’을 발표했지만, 2021년 종료됐음에도 새로운 계획을 아직 안 만들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만들어진 음주폐해예방위원회도 현 정부의 정부위원회 폐지·통합 방안으로 유명무실하게 됐다.

음주 문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영향이나 공공의 폐해 측면에서 보면 일반적인 정신건강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그런데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면서 사회의 기본 상수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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