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 "형사 한두번 한 것도 아니고…차별점 두는 게 숙제였죠"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카리스마 넘치는 조폭 두목과 형사 역을 자주 맡아온 배우 박희순 뒤에는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장난스러운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50대 나이에 아이돌처럼 젊은 청년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뜻이다.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박희순은 수식어가 부담스럽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3년간 계속 들으니까 제법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조금 힘들다"며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박희순은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새 시리즈 '선산'에서 또 한 번 형사 역을 맡았다. 집요하게 수사망을 좁혀가는 형사의 노련함과 가족사를 안고 있는 캐릭터의 어두운 이면을 그려내며 극을 이끌었다.
박희순은 "제가 형사 역이 한두 번도 아니고, 깡패 역 다음으로 많이 맡지 않았느냐"며 "기존에 연기한 형사들과 어떤 차별점을 둘지가 숙제였다"고 말했다.
박희순이 '선산'에서 연기한 최성준은 본능적인 수사 감각을 지닌 예리한 형사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연이어 불길한 사건들이 발생하자, 그것이 선산 상속과 관련돼 있음을 직감한다.
박희순은 그동안 다양한 형사 역을 맡으며 자연스레 터득한 직업적인 설정을 캐릭터에 녹여냈다고 한다.
수첩을 들고 다니는 드라마 속 여느 형사와 달리 휴대전화 여러 기능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윤서하(김현주)와 소통하는 방식에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박희순은 "원래 대본에서는 윤서하와 최성준이 실제 대면하는 장면이 극 후반부에 한 장면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능한 형사인 최성준이 용의자일 수도 있는 윤서하를 직접 만나보지 않는다는 설정이 납득되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고, 대본이 대폭 수정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박상민(박병은) 반장과 맞붙는 장면들에도 박희순의 해석이 반영됐다고 한다.
박상민은 과거 그 누구보다 성준을 형처럼 따랐던 후배이지만, 성준의 아들로 인해 사고에 휘말려 한쪽 다리를 절게 된다. 호형호제하던 둘의 사이에 죄책감과 원망이 들어서면서 둘의 관계는 냉랭해진다.
박희순은 "원래 대본에서는 최성준이 인원 감축으로 인한 해고 대상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가만히 읽어보니 가장 일을 잘하고 유능한 형사인 최성준이 잘리는 게 잘 이해가 안 갔다"며 "오히려 최성준이 후배 박상민을 대신해서 사직서를 내는 설정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감독님이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다"고 말했다.
"박상민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최성준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멀어진 둘의 사이를 외면하려고 하죠. 처음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 자신을 냉대하는 상민을 넉살 좋게 받아치는 대사들은 다 애드리브였어요. 원래는 쓴웃음을 짓고 마는 설정이었는데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라는 대사를 넣고, 장난스러운 경례도 추가했죠."
본인만의 촉과 노하우로 사건을 파헤치는 최성준은 유능한 형사지만, 박희순은 그를 "멋있게 보면 멋있지만, 못난 구석도 있는 캐릭터였다"고 짚었다.
최성준은 범인을 쫓느라 아픈 아내가 집에서 갑작스럽게 쓰러져 숨을 거두기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데, 방 안에서 헤드셋을 끼고 있느라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 한 아들에게 원망을 쏟아낸다.
박희순은 "최성준에게는 그때 아들을 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너무 크게 남아있다"며 "아들을 용서하지 못 한 게 아니라, 감히 용서를 구할 용기조차 없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아들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1990년도 연극배우로 데뷔한 박희순은 영화 '의뢰인', '용의자', 남한산성', '1987' 등에 출연했고, 넷플릭스 화제작 '마이 네임'(2021)으로 단숨에 인지도를 높였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중저음의 목소리로 국내 최대 마약 밀매 조직 동천파의 보스 최무진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덕에 국내외에서 큰 화제와 인기를 얻었다.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도 이때 나왔다.
박희순은 "최근에 파리에 간 적 있는데, 아직도 몇 분이 알아봐 주시더라"며 "차 한 대가 '끼익' 소리를 내면서 서더니 '마이 네임'을 외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렬한 캐릭터 덕분에 외국에서도 알아봐 주는 인기를 얻었지만, 박희순은 이미지 변신에 대한 욕심도 크다. 욕심나는 배역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조폭이나 형사만 아니면 다 좋다"고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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