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무덤’의 재현?…싱가포르 아트SG ‘2년차 징크스’ 직격탄

2024. 1. 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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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사흘 간 4.5만명 방문…전년과 비슷
갤러리들은 저조한 판매에 ‘울상’
부스 대신 파트너 미팅만…비용 줄여
지난 19~21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 아트페어 ‘아트 SG’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 [아트SG 제공]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올해도 한가한 페어였어요.”

‘동남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로 기대를 모았던 싱가포르 ‘아트SG’에 참가한 국내 갤러리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렇다 할 성과를 못냈다. 올해로 2년 차를 맞은 아트SG에 2년 연속으로 부스를 차린 한 갤러리 관계자는 “내년 참여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말할 정도다.

아트SG는 돈의 흐름이 집중되는 ‘아시아의 금융 허브’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만큼 시작부터 세계 미술계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트페어 자체의 성장성은 둘째 치고, 지속성까지 물음표가 생기는 상황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23일 미술계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 화려하게 데뷔했던 아트SG가 지난 19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 두 번째 막을 올렸다. 크고 작은 도시에서 우후죽순 열리는 ‘아트페어 홍수’가 예고되는 올해 첫 테이프를 끊은 국제 행사였다.

지난 21일 폐장일까지 이곳을 둘러본 관람객은 4만5000명. 전년과 엇비슷한 수치다. 이곳에 부스를 운영하기 위해 온 33개국 114개 갤러리들은 한가한 행사장 뿐 아니라 저조한 판매 실적 때문에 행사 기간 내내 전전긍긍해야 했다. 홍콩을 이탈한 자본과 금융기관이 유입되고 중국 본토에서 이주한 슈퍼리치들이 몰려드는 도시라는 싱가포르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큰손들의 지갑은 이곳에서 열리지 않았다.

지난 19~21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 아트페어 ‘아트 SG’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 [아트SG 제공]

글로벌 미술품 경매시장 자체가 쪼그라드는 와중에 싱가포르의 미술관과 갤러리 등 미술계 기반이 여전히 약하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싱가포르 문화예술을 보여주는 개성 있는 작가군도 턱없이 부족했다.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아트SG는 미술품 판매가 잘 이뤄지는 페어가 확실히 아니다”며 “홍콩 미술시장과 견줘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토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미술계 관계자도 “싱가포르는 ‘미술품 무덤’이라는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며 “눈에 띄는 공예 작품은 찾아볼 수 있었지만 현대미술 라인업은 사실상 존재감이 없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가 연중 열대 기후인 나라이다 보니 습도가 높아 작품이 쉽게 변형된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또 다른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스테인리스스틸 작품이 뒤틀려 휜 경우도 봤다”며 “아무래도 보관이 쉽지 않아 전반적으로 미술품 구매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미술품 구매 시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GST) 9%도 걸림돌이다. 올해 1월 1일부로 세율이 8%에서 9%로 인상됐다.

지난 19~21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 아트페어 ‘아트 SG’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 [아트SG 제공]

다만 정준모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는 “미술품을 구매하려는 슈퍼리치에게 사실 부가가치세는 별 문제가 아니다”며 “벌써부터 화랑을 중심으로 아트페어 피로현상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 더 큰 숙제”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 아트SG에는 하우저앤워스, 빅토리아 미로, 데이비드 즈워너, 페이스, 페로탕 등 대형 갤러리가 발을 뺐다. 올해 참여 부스 수만 해도 첫 해인 지난해(164개)보다 30% 가량 줄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트 바젤과 후원사인 UBS가 발행한 미술시장 보고서(The Art Market 2023)에서도 감지된다. 지난해 상반기 순자산이 높은 컬렉터들은 전년 상반기보다 평균적으로 박람회에 한 번 가량 덜 참석했다. 같은 기간 구매 비율도 74%에서 58%로 낮아졌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올해 아트페어만 377회로 추산된다. 이는 아트페어가 호황을 누렸던 지난 2019년과 유사한 규모다.

이렇다 보니 일부 갤러리를 중심으로 아트SG를 작품 판매가 아닌 미술계 인사와의 네트워킹 기회로만 접근하는 움직임이 읽힌다. 부스 참여가 아닌 파트너 미팅에만 참여해 비용을 줄이는 식이다.

아트SG를 창설한 기획자인 매그너스 랜프루만 해도 2007년 설립된 ‘아트 홍콩’을 급성장시켜 2011년 ‘아트 바젤’에 판매한 이다. 이후 그는 타이페이 당다이도 만들었다. 익명을 요청한 갤러리 관계자는 “페어 기획자를 비롯한 저명한 미술계 인사와 아시아 주요 컬렉터가 모이기 때문에 VIP 파티나 비즈니스 미팅에서 이들과 신뢰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시장을 탐색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매그너스 랜프루도 아트SG 개막을 앞두고 가진 미국 아트뉴스와의 줌(Zoom) 인터뷰에서 “국립 갤러리 싱가포르가 개막식과 VIP 프로그램 일환으로 파티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년에 열린 아트SG와 비교해 올해 가장 크게 바뀐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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