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런 기업이…'여직원은 불가능한' 기준으로 승진심사

고홍주 기자 2024. 1.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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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 사업장인데 여성 관리자 5명에 불과
사실상 전원 남성인 직군만 승진하는 구조
중노위 "60일 내에 승진심사 다시 하라" 판정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자료 사진. 2022.02.04. ppkjm@newsis.com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중앙노동위원회가 사실상 여성 직원은 충족할 수 없는 기준으로 승진심사를 한 사업장에 대해 성차별이라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중노위는 지난해 12월5일 2명의 여성 직원을 승진에서 차별한 것으로 파악된 사업주에게 60일 이내에 승진심사를 다시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이는 지난 2022년 5월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가 도입된 후 내려진 두 번째 시정명령이다.

해당 사업장은 약 1000여명이 근무하는 한 중견 기계제조업체다. 이 회사의 국내사업본부는 직접적인 영업활동을 하는 영업관리직과 세무, 회계 등 업무를 담당하는 영업지원직으로 구성돼있다. 영업관리직은 전원 남성, 영업지원직은 전원 여성으로 구성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에 이의를 제기한 신청인들은 영업지원직으로 일하는 12년차와 7년차 여성직원으로 지난해 모두 과장급 승진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들은 사측이 부당하게 여성을 승진에서 차별했다고 주장했다.

중노위가 사건을 살펴본 결과, 해당 사업장의 승진과 관련한 취업규칙과 인사규정은 남녀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사실상 여성직원들이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을 적용하는 '간접차별'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접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영업지원직은 충족할 수 없는 매출점유율이나 채권점유율 같은 지표 등을 승진 기준으로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신청인들은 모두 승진에서 탈락한 반면, 영업관리직 남성직원 4명 중 3명이 2급갑(과장급)으로 승진했다. 승진에서 탈락한 신청인들은 3년간 인사평가 평균이 해당 남성 직원보다 동일하거나 더 높았고, 직급 근무기간도 승진한 남성직원들보다 더 길었다.

사측은 "입직 경로의 차이, 업무 확장성의 차이 등으로 고급관리자로 가는 역량이 부족했다"고 여성 직원들의 승진 탈락 이유를 주장했지만 중노위는 이러한 이유가 불리한 처우를 정당화할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여성직원과 비슷한 시기에 고졸로 입사한 남성직원들은 모두 2급갑 이상으로 승진한 바 있고, 2급갑 이상의 직급이라고 해도 반드시 관리자 보직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이 회사는 2급갑 이상 고위직으로 갈수록 남녀 성비가 크게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6월 기준 사무직 성비는 남성 297명(88.13%), 여성 40명(11.86%)이지만 2급갑 이상만 놓고 보면 남성은 150명(96.7%)인 반면 여성은 5명(3.2%)에 불과했다.

또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해당 사업장에서 2급을에서 2급갑으로 승진한 53명 중 단 3명만이 여성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2급갑 이상으로 승진한 46명 중 여성은 1명도 없었다. 신청인들이 속한 국내사업본부의 경우에도 2019년부터 2023년까지 2급을에서 2급갑으로 승진한 12명 중 여성은 전무했다.

당초 초심인 지방노동위원회는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중노위는 ▲통계적 결과 ▲승진심사 시 실제 적용된 기준 ▲승진 이후의 역할 ▲현재 2급갑 이상 승진자의 업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차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청인들에 대해 승진심사를 다시 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사업장이 판정서를 받은 지 15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관할 지방고용노동청이 시정명령을 확정한다. 만일 정당한 이유 없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중노위는 "이번 판정은 외견상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해 남녀를 동일하게 처우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여성이 현저히 적고, 그에 따라 여성은 불리한 결과에 처하는데 사측이 그 기준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한 경우를 성차별로 인정한 사례"라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차별에 대한 시정명령을 했다는 부분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태기 중노위원장도 "이번 판정이 노동시장에 활력을 주고 질적 수준을 높이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delant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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