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외교’ 획기적 확장 급하다[시평]
국가안보실 3차장 신설 적절
경제안보와 사이버안보 넘어
신흥기술 비서관 추가 급선무
한미동맹 ‘디지털 전환’ 중요
외교부 3차관 신설 검토할 때
디지털 국가 책략도 마련해야
2024년에 들면서 대통령실의 인사·조직 개편이 단행됐다. 국가안보실도 개편돼 3차장이 신설됐다. 1차장 산하에서 공급망·수출통제·원전 등을 담당하던 경제안보비서관은 추가로 과학기술안보 업무를 맡아 3차장 산하로 이관되고, 2차장 산하에 있던 사이버안보비서관도 3차장 산하로 옮겼다. 외교안보 담당 1차장, 군사안보 담당 2차장과 더불어 3차장은 경제·과학기술·사이버 안보를 포함한 신흥 안보 업무를 맡는다. 사이버특보 신설에도 주목한다. 사이버안보 업무는 물론이고 인공지능(AI)과 가상자산 등 신흥기술안보 분야를 챙기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대통령실의 몸집만 키운다는 비판도 있지만, 글로벌 정세 변화에 부응하는 시의적절한 행보여서 기대를 모은다. 오히려 지금 설정한 3차장 업무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릴 것을 제언한다.
첫째, 과학기술외교를 국가안보의 프레임으로 보는 글로벌 추세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과학기술 부처의 국제 협력 업무 정도로만 과학기술외교를 대하던 시절은 지났다. 마찬가지로, 외교안보 부처에서 기왕에 담당했던 과학기술 관련 협정 체결이나 국제기구 활동 정도로만 볼 일도 아니다. 이제 과학기술외교는 국가 간 갈등을 관리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지정학적 권력 경쟁의 핵심 사안이 됐다. 미래 국력의 원천으로서 신흥기술 역량을 확보하고, 첨단 제품 및 핵심 자원의 수출입을 통제하며, 신흥기술 관련 국내외 정책과 제도 및 국제규범을 정비하는 업무가 국가 안보 전략의 내용을 구성하게 됐다. 이러한 업무의 주무 창구로 ‘과학기술수석실’이 아닌 ‘국가안보실’이 거론되는 맥락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둘째, 최근 양적으로 늘어난 신흥기술안보 이슈들이 다양한 연계 과정을 거쳐서 지정학적 복합 안보 위기로 ‘창발(創發·emergence)’하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최근 반도체, 5G/6G, 배터리, 핵심광물, AI, 슈퍼컴퓨터, 에너지·녹색기술, 보건·바이오 기술, 양자 기술 등이 국가 간 갈등의 논제로 부각됐다. 이들 이슈는 공급망 안보와 디지털 경제 및 공공·문화 외교 분야와도 연계되면서 산업·경제·문화 문제를 ‘안보화’하고 있다. 사이버안보, 우주안보, 기술동맹, 첨단 군비 경쟁 등의 이슈는 이미 지정학의 문턱을 넘어선 사례들이다. 이러한 복합 안보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안보실 3차장 산하에 경제안보와 사이버안보 외에 여타 신흥기술안보 업무를 전문적으로 다룰 제3의 비서관직 설치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신흥기술안보는 일국 차원에서 모색할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야 하는 네트워크 외교 전략 사안이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디지털 패권 경쟁 사이에서 살길을 모색할 문제다. 최근 강화된 한미동맹의 ‘디지털 전환’은 큰 과제 중 하나다. 한미동맹의 외연 확장 차원에서 일본·영국·네덜란드 등 선진 우방들과의 양자 협력이나 파이브아이즈(Five Eyes),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 소다자 협력체와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글로벌 동지국가(like-minded countries)나 인도·태평양 역내 국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등과의 연대 외교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신흥기술안보는 3차장만의 업무가 아니라 1차장과 2차장을 포괄하는 국가안보실 전반에서 챙겨야 할 업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컨트롤타워 설치의 단순 논리를 넘어서,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되는 요구를 국가 전략 전반의 차원에서 엮어내는 ‘메타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안보실의 개편뿐만 아니라, 신흥기술안보 업무를 수행하는 범정부 차원의 업무 조정과 추진 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 국가정보원에는 이미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차관급의 3차장 직이 설치돼 있다. 외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여러 부서에 분산된 관련 업무를 통합해 신흥기술외교를 담당하는 3차관 직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국방부나 산업통상자원부도 관련 기능을 담당할 차관급 직제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안보실 3차장 신설을 지정학 시대를 헤쳐갈 대한민국의 ‘디지털 국가 책략(digital statecraft)’을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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