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총액 말고 산출 근거 공개해라”… 정부, 정비사업 표준계약서 배포

심윤지 기자 2024. 1. 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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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과 시공사의 공사비 갈등으로 정비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일을 막기 위해, 정부가 새로운 정비사업 표준공사 계약서를 배포했다. 사업의 ‘첫 단추’라 할수 있는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공사비 산출 근거를 공개하게 한 것이 핵심이다.

서울의 한 재건축 건설현장. 이준헌 기자

국토교통부는 공사비 산출이나 조정 근거를 보완한 정비사업 표준공사 계약서를 배포했다고 23일 밝혔다.

그동안 대다수 정비사업은 공사비 총액만 합의되면 계약을 체결했다. 시공사가 어떤 근거로 공사비를 책정했는지 알기 어렵다보니, 사업 진행 과정에서 공사비 증액 요구를 둘러싸고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예컨대 조합이 A등급 자재를 요구했으나 시공사는 B등급 자재를 기준으로 공사비를 산정해 수십억원을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할 경우, 조합은 시공사 요구가 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정보의 비대칭과 이로 인한 불신이 조합과 시공사의 법정 공방으로 번지면서 정비사업이 지연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표준계약서는 공사비 산출 세부내역서를 첨부 문서로 제출하도록 했다. 공사비 산출 세부내역은 조합이 기본설계 도면을 제공해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설사가 도면을 제공받지 못할 경우 품질 사양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품질 사양서는 조합에 제안하는 마감재·설비의 사양을 명시한 서류다.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도 지금보다 명확하게 바뀐다. 현행 계약서는 조합과 시공사의 ‘단순 협의’를 거쳐 공사비를 조정하도록 하는 등 규정이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설계변경으로 추가되는 자재가 기존 품목인지 신규품목인지에 따라 단가 산정 방식을 달리 하도록 했다. 시공사 귀책 없이 조합측 요구로 설계를 변경하는 경우 신규품목이 추가되는 경우에 준해 공사비를 조정해야 한다.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하는 기준도 현실화한다. 그동안은 공사비 산정 기준일로부터 실착공일까지는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에 따라 공사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착공 이후에는 물가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액은 배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음식·의류 등 소비재에 주로 사용되는 소비자물가지수 대신 국가계약법에 따른 지수조정률을 활용해 물가인상분을 반영하도록 했다. 총공사비를 노무비, 경비, 재료비 등 항목별로 나눈 뒤 각각 별도 물가지수를 적용해 물가 상승을 반영할 수 있게 된다. 착공 이후 특정 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일부 반영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신설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표준계약서 배포를 긍정 평가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합은 공사비 책정이 투명해질 수 있고, 건설사는 착공 이후 물가반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양쪽 입장을 모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무사항이 아닌 권장사항이더라도 표준공사계약서가 사용된 정비사업장이 하나둘 늘어나면 실무적으로는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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