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북 밀월, 지켜만 봐서는 큰코다친다 [핫이슈]
북한 라디오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21일 “푸틴 대통령이 빠른 시일 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려는 용의를 표명했다”고 선전했다. 푸틴 방북이 올해 이뤄진다면 24년 만이다. 푸틴은 2000년 7월 소련과 러시아 정상을 통틀어 처음으로 평양을 찾았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과 북한을 거쳐 일본까지 간 것이다. 한국이 푸틴의 동선에서 제외되자 당시 청와대와 외교부 당국자들은 속칭 ‘멘붕’이 됐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정보 및 선전전에 능한 푸틴의 목표는 ‘한국 길들이기’였다. 소련은 북한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0년 9월 한국과 수교했고, 이듬해 소련이 해체된 뒤 조약 당사국 지위를 러시아가 이어받았다. 한국은 수교 직후 몇 년 간 러시아를 관심을 갖고 대했지만 이내 혼란한 러시아가 별 볼 일 없다는 판단에서 미국에 붙어 러시아를 무시했다는 것이 크렘린의 인식이었다.
1996년 강경 민족주의자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외무장관에 부임한 뒤 한국에 대한 강압과 남북한 등거리 외교는 그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1997년 양국 간 외교관 맞추방 사건도 러시아가 우리를 겁박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푸틴은 프리마코프처럼 ‘존중받는 강대국 러시아 부활’을 꿈꾸며 등장했고 그런 의지는 이후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24년 전 평양 방문 역시 외교관 추방 사건처럼 러시아의 ‘한국 때리기’ 일환이었다. 푸틴은 ‘한국 패싱’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북한행을 선택했었다.
우리가 러시아 행보에 무대응이나 무시 전략으로 나가면 러시아의 대북 지원과 교류는 더 활발해질 것이다. 24년 전처럼 푸틴의 방북은 한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속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푸틴과 김정은 모두 남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관종’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반대로 러·북 밀착을 비판할 경우 푸틴은 우리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할 것이다. 또 러시아가 필요해서 북한 무기를 사용해 놓고선 우리가 먼저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억지를 부릴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나라들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현 정부가 러시아에 당장 협력 카드를 꺼내들기는 힘들다. 여기에 대러시아 외교의 난점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러시아와의 접촉을 위해 미국 측 이해를 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통해 러시아에 특사 파견 등으로 우리 입장을 설명하면서 러·북 간 밀월 행태를 견제해야 한다. 미국이 우리에게 포탄 지원을 요구한다면 올들어 북한이 전쟁을 운운하는 상황에서 자주국방을 위해 추가 수출은 안된다고 설득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관심을 북한에만 쏠리게 놔둘 순 없다. 당초 우리가 소련(러시아)과 수교했던 목적 중 하나가 그들의 영향력을 활용해 북한을 제어하기 위한 것임은 지금도 유효하다. 북한의 자신감 넘친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러 간 물밑 접촉까지 방치하고 있을 수는 없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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