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 악용', 공시강화로 대응한다는 정부...효과 있을까
콜옵션‧만기전 취득 공시강화 및 리픽싱 규제 도입
CB발행한도‧콜옵션 금지 등 직접규제 상당수 빠져
금융당국이 전환사채(CB) 시장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에 나선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 전환사채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세미나를 열어 대략적인 개선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전문가 등이 발표한 개선 방향은 △전환사채 관련 공시 강화 △발행한도 등 직접 규제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었다. 특히 전환사채 발행한도 제한, 콜옵션 원천 금지 등의 직접 규제는 코스닥 상장사 중심으로 무분별하게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이를 불공정거래에 악용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주요 해법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 금융당국이 내놓은 제도개선 방안에는 전환사채 발행한도 제한이나 콜옵션을 금지하는 직접규제는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금융당국은 공시를 강화하고 전환가격을 과도하게 조정(리픽싱)하는 사례를 견제하는 개선책을 내놨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전환사채 시장 건전성 제고방안을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한국상장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연합회, 자본시장연구원 등 유관기관이 참여했다.
금융위가 내놓은 제도개선은 크게△공시강화 △전환가격 조정 합리화 △전환사채 시장 불공정거래 집중 점검 세 가지다.
CB 콜옵션 문제, 사후 공시로 대응
이번 제도개선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공시 강화다.
먼저 회사가 전환사채의 콜옵션 행사자를 지정할 경우 공시의무를 부과한다. '매수선택권'이라고도 하는 콜옵션은 회사가 사채권자에게 빌린 돈을 갚고 채권을 회수하겠다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콜옵션으로 회수한 채권을 동일한 조건(전환가격 등)으로 제3자에게 넘길 수 있다.
문제는 회사가 콜옵션을 다른 이에게 넘겨도 공시의무가 없어 다른 투자자는 정보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회사가 콜옵션으로 회수한 채권을 최대주주 등에게 무상 또는 헐값에 채권을 넘기는 사례도 있다.
금융위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회사가 콜옵션 행사자를 지정하면 행사자가 누구인지, 정당한 대가를 받고 넘겼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제도를 바꿀 계획이다.
다만 최초 전환사채 발행 공시를 할 때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콜옵션 행사자를 아직 정해두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구체적인 행사자가 누구인지 공시하기 어렵다. 이에 해당 공시는 회사가 콜옵션 행사자를 결정하면 이를 공개하는 사후공시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기 전 사채 취득' 방향도 공시의무화
전환사채를 발행한 회사가 콜옵션, 풋옵션(채권자의 조기상환청구권) 등의 이유로 만기 전에 사채를 다시 취득할 때도 공시를 강화한다.
적지 않은 상장사들이 만기 전에 전환사채를 취득하고선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이하 증발공 규정)'에 따르면 만기 전 사채 취득 후 처리 방향에 대한 공시는 상장사 자율에 맡겨두고 있다.
만기 전 사채 취득을 한 상장사들은 채권을 아예 소각, 즉 없애버리거나 다른 채권자에게 재매각할 수 있다. 문제는 재매각이다. 만기 전 취득한 사채를 제3자에게 재매각하면 사실상 전환사채를 새로 발행한 것과 유사하다. 해당 상장사 주주 입장에선 또다시 지분 희석 위험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만기 전 취득한 사채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정보를 상장사 자율에 맡겨두면서 전환사채 신규발행에 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전환사채 신규발행은 주요사항보고서나 증권신고서를 통해 채권 정보를 상세히 제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상장사들이 만기 전 전환사채를 취득하면 이를 소각할지 아니면 재매각할지에 대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제도를 바꿀 방침이다. 아울러 재매각할 경우 누구에게 재매각할지도 기재하도록 공시를 강화할 예정이다.
아울러 상장사들은 앞으로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없는 사모형태(50인 미만) 전환사채 발행 시 대금납입기일 일주일 전에 반드시 주요사항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현재 사모 전환사채는 증권신고서 제출의무가 없어 발행 결정이 이뤄지고, 납입기일 하루 전 또는 당일에 주요사항보고서가 올라오는 상황이다. 해당 제도개선은 투자자가 사전에 사모 전환사채 발행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전환가격, 규정보다 낮추려면 주총 통과해야
공시강화 외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전환가격 조정(리픽싱) 제도다.
전환사채는 채권의 특성상 사들인 채권금액만큼 지정가격에 발행회사의 주식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주식연계채권의 일종인 것이다.
따라서 얼마에 주식으로 바꿔갈 수 있는지 즉 전환가격이 투자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전환가격이 낮을수록 채권자가 바꿔갈 회사의 주식 수량도 늘어난다. 따라서 채권자 입장에선 전환가격이 낮을수록 좋다.
다만 전환가격이 내려가면 그만큼 발행해야할 신주물량이 늘어나면서 소액주주 등 기존 주식투자자들은 지분율 희석이 불가피하다.
현재 증발공 규정은 리픽싱 최저한도를 최초 전환가격의 70%로 제한하고 있다. 가령 최초 전환가격이 1만원이면 회사 주가가 계속 떨어져도 전환가격은 7000원까지만 낮출 수 있다. 예외적으로 경영정상화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나 정관을 근거로 전환가격을 70% 미만으로 낮출 수 있다.
문제는 회사 정관에 예외적으로 70% 미만으로 하향조정하는 조건을 넣어 이를 이용해 전환가격을 액면가까지 낮추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상장사들이 정당한 사유가 없음에도 정관을 근거로 전환가격을 크게 낮춰 소액주주 등의 지분율 희석 피해를 낳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정관에 의한 리픽싱 최저한도 예외 적용 근거를 삭제한다는 내용을 증발공 규정에 넣을 계획이다. 정관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전환가격을 낮추는 행위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경영정상화 등 예외적인 사례가 있다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구한 경우에는 70% 미만으로 전환가격을 낮추는 것을 허용할 방침이다.
직접규제 상당수 빠져…불공정거래는 엄정 대응
정부는 전환사채 제도개선을 논의한 지 반년 만에 구체적인 방향을 내놨지만 지난해 7월 논의했던 직접규제관련 상당수의 내용은 빠져있다.
지난해 제도개선안의 초안을 맡은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내용에는 △콜옵션 부여 자체를 제한 △전환사채 발행한도 일정수준으로 제한 △현물 대용납입 시 공정성‧객관성 제고를 위해 복수의 외부평가 의무화 △만기 전 사모사채 재매각 시 1년 간 주식전환 제한 △과도한 전환가액 하향조정 제한 등의 내용이 있었다.
이 중 이번 제도개선안에 반영된 것은 '과도한 전환가액 하향조정 제한' 하나 밖에 없다. 전환사채 발행한도를 제한하거나 콜옵션을 원천 차단하는 등의 보다 강력한 직접규제는 이번 제도개선안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이번 논의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전환사채 발행한도 제한 등은 너무 과도하게 제도를 규제하는 측면이 있어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융위는 금감원과 함께 사모 전환사채 시장의 불공정거래에도 엄정 대응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부터 금감원은 사모 전환사채 관련 불공정거래 혐의 40건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왔고 이 중 총 14건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다. 이를 통해 총 33명이 부정거래 등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현재 금감원은 남은 26건의 사모 전환사채 관련 불공정거래를 조사 중이다. 사모 전환사채 관련 불공정거래는 대체로 상습 불공정거래 전력자가 다수 연루되어 있고 허위의 바이오사업 등 테마주 투자심리를 악용하거나 상장폐지 등으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현재 조사 중인 사건들을 신속처리하고 사모 전환사채 관련 불공정거래 혐의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아울러 금융위는 이번 제도개선안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하위규정 개정을 통해 가능한 사항은 상반기 내 마무리하고 법률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입법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이다.
김보라 (bora5775@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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