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잃어버린 것들도 우리 일부”… 중년이 된 작가가 건네는 위로·공감
“상실에 대한 슬픔 당연하지만
대체할 새로운 무언가 찾아야”
“부모로서 삶 이전과 너무 달라”
화자 대부분 기혼남성인 이유
젊은날 열정·청춘 함께한 친구…
시간 흐르며 사라진 것들 주목
‘나’는 어느 날 한 파티에서 옛친구들과 만난다. 그간 결혼을 하고 두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른 나와 달리 미혼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면 마치 나만 다른 나라로 이민한 사람처럼 멀리 동떨어진 기분이 든다. 친구들 사이 한 10대 소년의 죽음을 두고 윤리 논쟁이 벌어지고, 나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나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소설가 앤드루 포터의 새 소설집 ‘사라진 것들’에 수록된 단편 ‘오스틴’의 내용이다. 시간이 우리에게서 가져간 것들, 그리고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그가 15년 만에 낸 두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작가는 2013년 장편소설 ‘어떤 날들’을 낸 이후 다시 단편소설로 돌아왔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30대였던 작가는 50대가 됐고, 그의 관심은 지나온 것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회한으로 옮겨왔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 15편의 화자 대부분은 아이를 키우는 40대 유부남이다. 한층 깊어진 눈으로, 시간의 흐름이 함께 사라진 것들을 헤아린다.
최근 이메일을 통해 만난 작가에게 15년 동안의 변화에 대해 물었다. “그 사이 아들과 딸이 태어났고, 이것은 제 삶을 크게 바꿨습니다. 육아 때문에 글 쓸 시간이 크게 줄어든 데다 부모가 된 지금의 삶은 이전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아이들이 태어나기 직전까지 작업해왔던 이야기들과 연결되지 않았지요. 그런 나날을 보내다 어느 날 저녁 ‘오스틴’의 줄거리를 떠올렸고 그것을 시작으로 2년간 다시 단편 작업을 했습니다.”
작가에게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안겨준 첫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와 같이 어느 한순간을 예리하게 베어내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로 보여주는 포터의 매력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삶에 지울 수 없이 각인되는 순간과 그로 인한 성장통을 다룬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과 수많은 사라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라진 것들’은 어딘지 모르게 연결돼 있다는 인상이다. 포터 역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과 ‘사라진 것들’이 연결돼 있기를 원하며 썼다고, 독자들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작품에 수많은 ‘사라진 것들’이 나온다. 젊은 날의 열정, 청춘을 함께한 친구, 반짝반짝 빛나던 재능…. 시간은 우리를 예상치 못한 낯선 곳에 데려 놓고, 화자들은 무언가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포터는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의 한가운데에 놓인 사람들 이야기”라고 했다.
“저 역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지난해 아버지를 잃었고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실이었을 겁니다. 아파트에 도둑이 들어 원고를 잃어버리기도 했지요. 저도 친구나 연인, 그리고 제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저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책 속 인물들 모두 그렇게 행동하지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은 우리가 아직 가지고 있는 것들만큼이나 우리 삶의 일부라고 말입니다.”
책 속 화자들은 곧 내가 되어, 비슷한 경험을 지닌 우리의 상실감과 공허함을 위로한다. 사라지고 사라지지만 ‘0’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뺀 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채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삶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사라진 것들을 대체할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에 갇히게 되죠. 소설 속 인물들 모두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과거는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요.”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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