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 모두 트럼프 경제스승의 책을 본다…예고된 관세전쟁
트럼프 “관세 10% 일괄 인상”
중국뿐 아니라 동맹국도 정조준
미국의 저명한 소비자운동가인 로리 월릭은 1995년 글로벌무역감시라는 비영리 시민단체를 만들어 2021년까지 이끌었다. 하버드 법대 최우등생이던 월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에 반대할 목적으로 곧장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1990년대 나프타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섰다. 1992년 체결된 나프타 규정이 노동자들에게 해를 끼치고 식품 안전과 환경에 대한 미국의 법적 기준을 무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월릭 이상으로 나프타 반대에 앞장선 보수주의 성향의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미국 철강회사를 대신해 반덤핑 소송을 제기하고 이 조약이 미국 일자리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나중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역임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다. 이념적으론 정반대 입장인 두 사람이 당시 정부의 나프타 관련 행사장에 반드시 나타나 같은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 두 사람에겐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중서부 도시(러스트벨트) 출신이다. 월릭의 가족은 고철 처리장을 운영했고 라이트하이저의 아버지는 제철소 노동자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두 사람은 미국의 자유무역 행진에 제동을 거는 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무역대표부 대표를 역임한 라이트하이저는 무역뿐 아니라 경제 정책 전반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스승’이다. 월릭은 노동·환경·소비자 운동에서 정부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저명한 사회운동가다. 월릭은 미국경제자유프로젝트(AELP)의 ‘무역을 재고하자’(ReThink Trade) 프로그램의 책임자다.
두 사람의 협력은 미국 무역 정책에서 수십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나프타 재협상을 이끌었고, 중국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으며 세계무역기구(WTO)의 상소기구(Appellate Body)의 기능을 동결시켰다. 라이트하이저는 로리 월릭 같은 진보적 민주당원들의 도움으로 이 임무를 완수했다. 2019년 12월19일, 미국 연방하원은 나프타의 개정안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찬성 385(민주 193, 공화 192), 반대 41(민주 38, 공화 2, 무소속 1)로 통과시켰다. 초당적 지지였다.
라이트하이저와 월릭은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 창설과 2001년 중국 가입에 반대하는 로비 활동도 함께 했다. 이들 두 사람의 협력은 지금 미국에서 자유무역과 중국에 반대하는 입장이 트럼프 개인이나 공화당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민주당·공화당 양당에 걸쳐 미국 사회의 광범위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빌 클린턴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힌 2016년까지 정당에 관계없이 자유무역 지지를 고수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가장 적극 지지한 이는 조 바이든 당시 상원의원이었다. 트럼프는 지금도 이 부분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2016년 11월 트럼프가 대선에 이기고 나서 라이트하이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무역대표부 대표에 임명한 것은 자유무역, 세계무역기구, 중국에 관련한 입장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 재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는 라이트하이저를 매우 각별하게 서너 차례 만나, 미국 노동자들을 위한 무역 정책의 방향을 더욱 강력하게 제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에 대한 라이트하이저의 응답이 6월 그가 내놓은 신간 ‘공짜 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이다.
320쪽이 조금 넘는 이 책은 지금 워싱턴에서 통상과 관련한 초당적 교과서로 읽히고 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법안으로 한국이 당황했을 때 필자가 오랜 친분이 있는 민주당 소속 연방의원에게 무역 정책에 대해 문의했더니, 그는 라이트하이저의 이 책을 읽어보라고 조언했다. ‘공짜 무역은 없다’의 핵심은 트럼프 시대의 특징인 무역 갈등과 관세 전쟁의 확대이다. 이 책은 미국의 무역 정책에서 수십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관세와 무역 장벽을 옹호한다.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비록 방식은 다르지만 미국 제조업을 재건하고 중국에 대해 강경한 노선을 취하기 위해 실행해온 같은 정책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설명한다.
라이트하이저는 중국 정부가 미국 신문 광고를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중국의 소셜미디어 회사가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며, 모든 비영리 단체가 (중국 관련 기관으로부터) 받은 외화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켜야 한다고 적시했다. 책 전체에서 라이트하이저는 미국이 지난 40년 동안 추진한 친세계화 합의로부터 거리를 두는 작업에서 여전히 미미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 모두가 세계 무역의 패러다임을 아직 충분히 바꾸지를 못했다고 지적하며 미국 정부가 반드시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해야 한다고 썼다. 예상되는 중국의 보복은 오히려 미국의 전략적 ‘디커플링’(관계 단절)에 도움이 되고 중국의 무질서한 부상을 억제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도 미국 생산자들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경계하면서 세계무역기구를 비판하고 있다.
2016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된 사실에 가장 놀라고 당황한 사람은 트럼프 본인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당선이었기에 주변엔 진지하게 준비된 사람이 없었다. 트럼프는 놀라고 당황했고, 대통령으로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운영하지도 못했다. 이번 재출마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알려진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엔 미국 보수주의 전문가·정치인·미디어·기업·종교인 등이 세대를 막론하고 집결해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1만명이 넘는 보수 전문가들의 데이터베이스다. 트럼프가 언론 인터뷰에서 다시 취임하면 “꼭 하루만 독재를 하겠다”고 한 것은 1만5천 이상의 대통령 임명직 정부 공무원을 하루 만에 ‘프로젝트 2025’에서 준비한 인력으로 대체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2020년 트럼프 정부 말기에 정부 기관에서 일한 보수주의 전문가들은 워싱턴에 남아 재집권을 준비했다. 사람을 모집해서 교육하고 훈련시켰다. 이들은 미국의 순간(American Moment)이란 비영리 교육기관을 설립해, 지난 2년 반 동안 6천여명의 보수주의 활동가를 모집·교육·훈련시켰다. 이곳에서 가장 주력하는 분야는 미국의 무역통상 정책이다. 지난여름 트럼프는 ‘미국의 순간’의 교육 연수장에 라이트하이저의 ‘공짜 점심은 없다’를 대량 구매해 보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장 열광적인 고정 지지층은 바이블벨트(복음주의 교단이 성행하는 남부지역)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인 중서부지역)에 있다. 연방대법관을 6 대 3의 보수주의 우위로 만들어낸 트럼프의 성과는 기독교 우파뿐만 아니라 범복음주의 교단을 확실하게 지지층으로 붙들어 맸다. 기독교 우파들은 “신이 트럼프를 만들었다”(God Made Trump)라고 열광한다. 워싱턴의 정치가 자본과 결탁해서 외국 기업들에 미국의 일자리를 팔아넘겼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전은 유권자의 절대다수를 점하는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다. 지난 15일 영하 40도의 혹한에 치러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나머지 후보들의 지지율 모두를 합한 것보다도 10%포인트 이상 더 높았다. 아이오와는 바이블벨트에 러스트벨트를 결합한 지역이다.
트럼프의 무역 정책은 점점 더 보호무역 성향을 강화할 것이다. 그가 11월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관세 장벽은 중국만이 아니고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높아질 것으로 봐야 한다. 트럼프는 지난 1월15일 아이오와에서 “장난감에서 항공기까지 모든 수입품에 관한 관세를 일괄적으로 10% 이상 올리겠다”며 경선을 시작했다. 한국은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가?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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