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항공사’에서 ‘가성비’ 대명사로...해외여행까지 접수한 LCC
FSC 뛰어넘으며 화려한 비행 성공
[비즈니스 포커스]
한국에서 저비용항공사(LCC)가 처음 해외 하늘길을 연 것은 2008년이다. 2005년 설립해 김포와 제주도만을 오가던 제주항공이 그해 일본으로 처음 항공기를 띄우며 국내 LCC의 해외 취항 역사가 시작됐다.
제주항공의 타깃은 명확했다. 실속 있는 해외 관광을 추구하는 여행객들이었다. 탑승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과 같은 대형항공사(FSC)들과 달리 최소한의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대신 항공료를 대폭(약 30%) 낮춰 소비자 공략에 나선 것이다.
이로부터 약 13년이 흐른 지난해 LCC는 마침내 해외여행의 보편적 이동수단으로 떠오른 모습이다. 사상 처음으로 LCC 비행기로 해외를 오간 여행객 수가 FSC를 앞질렀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의하면 지난해 국내 9개 LCC를 이용한 해외여행객 수는 2419만4339명으로 집계됐다. FSC를 타고 해외로 나간 여행객은 2300만7405명으로 LCC보다 약 120만 명 적은 수치를 보였다. LCC의 국제선 승객 점유율도 35.41%로 사상 최대를 나타냈다. FSC의 점유율은 33.68%였으며 외항사가 31%를 각각 기록했다.
종전 LCC의 최대 점유율은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29.5%였다. 이때 FSC 2개사의 점유율은 37.5%로 LCC를 훨씬 웃돌았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FSC가 LCC를 추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때 ‘싸구려 항공사’라는 오명이 씌워지며 외면받기도 한 LCC가 화려한 비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누가 LCC 타나’ 걱정했는데…
실제로 LCC가 처음 한국에서 국제선을 취항했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많은 여행객들이 LCC 비행기에 몸을 맡길 것이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 타면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시됐던 한국인들에게 LCC의 운항 방식은 낯설기만 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항공권을 제공하기 위해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폭 낮춘 LCC의 비즈니스 모델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음료수나 간식을 달라고 해도 유료로 판매하는 LCC에 대해 ‘기내에서 제공되지 않는 서비스가 너무 많다’, ‘승무원들이 불친절하다’ 등과 같은 불만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여기에 운항 초기 잦은 지연 및 결항까지 이어지며 LCC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LCC에 대한 인식은 빠르게 변화해갔다. ‘싸구려 항공사’라는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가성비 항공사’로 주목받으며 빠르게 몸집을 키워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LCC가 빠르게 성장하게 된 첫째 배경은 ‘소비자 경험’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FSC에 익숙한 한국 소비자들에게 처음엔 LCC의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이들이 LCC 타보며 단점도 있지만 가격적인 강점도 분명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며 선호도가 높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과 같은 FSC가 LCC에 진출한 점도 시장 성장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LCC를 찾는 여행객들이 늘자 아시아나항공은 2007년 에어부산을 설립하며 LCC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에 질세라 대한항공도 2008년 진에어 만들고 LCC 취항에 나섰다.
항공산업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두 FSC가 나란히 LCC에 뛰어든 것을 계기로 ‘LCC는 안전하지 않다’는 오해를 가졌던 일부 소비자들도 마음 놓고 LCC를 탑승하게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각 LCC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운영 노하우를 쌓으며 잦았던 항공기 결항과 지연도 점차 줄어든 것은 기본이다.
LCC들은 1만원대에 항공권을 판매하는 파격 마케팅을 수시로 선보이며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이들에게 LCC에 대한 좋은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 서비스의 질도 높였다. 한국 소비자들 눈높이에 맞춰 기내에서 다양한 경품 이벤트와 승무원들이 공연을 펼치는 등 이색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소한의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해외 LCC와 다르게 한국 LCC들은 경쟁적으로 많은 서비스를 선보이며 이른바 ‘한국형 LCC 서비스’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1조 클럽’ 세 곳…실적도 고공 행진
다양한 전략들을 앞세워 LCC의 성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이어졌다. 빠른 성장성과 밝은 시장 전망을 앞세워 증시의 문도 두드리는 LCC도 생겨났다. 2015년 제주항공을 시작으로 진에어·티웨이항공·에어부산 등이 상장에 성공했다. 2018년에는 제주항공의 시가총액이 아시아나항공을 넘어서기도 하는 등 LCC는 항공산업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동안 이들이 쌓은 공든 탑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빠진다.
FSC들은 많은 수의 항공기를 보유한 덕분에 손님 대신 화물을 운송하며 실적을 선방했다. LCC들도 생존을 위해 이 대열에 합류했으나 항공기 수가 많지 않은 탓에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데 실패하며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
LCC를 바라보는 전망도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곧 다 망할 것이다’, ‘LCC 면허를 9개나 내준 정부의 실책이다’ 등의 지적이 쏟아지며 LCC 가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막혔던 하늘 길이 서서히 열리면서 소비자들은 LCC를 잊지 않고 다시 돌아왔다. 오히려 그 수요는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팬데믹이 야기한 고금리, 고물가,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LCC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설명했다.
사상 처음으로 해외여행객 수가 FSC를 넘어서면서 주요 LCC의 실적도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제주항공과 진에어는 전년 대비 100% 이상의 매출이 오르며 ‘1조 클럽’에 다시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첫 매출 1조원 돌파가 유력시된다. 2022년 나란히 적자였던 영업이익도 흑자전환을 앞두고 있다.
올해 전망도 밝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해외여행객 수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가장 큰 수혜는 주요 LCC들이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히 높은 물가와 치솟은 금리로 인해 명품 소비 증가세가 한풀 꺾이는 등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도 이런 추세가 반영될 전망이다. 비행 거리가 길어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유럽, 미국보다는 일본, 동남아 등으로 휴가나 관광을 떠나는 이들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해외여행 트렌드 자체가 단거리 노선에 집중된 LCC에 유리한 구조”라며 “올해 LCC와 FSC의 국제선 승객 점유율은 작년보다 더 많은 격차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LCC들의 순위 다툼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매출 규모로 따지면 LCC 순위는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순으로 이어진다. 다만 올해는 이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한항공과 아니아나항공의 합병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LCC 진에어와 아시하나항공의 LCC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도 ‘한집 살림’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LCC 3사가 합치게 되면 2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일명 ‘메가 LCC’가 탄생하게 된다.
보유 항공기 수도 큰 차이가 난다. LCC 3사를 합치면 총 51대(2023년 11월 기준)의 기재를 운영하게 돼 제주항공(40대)을 압도한다. LCC 업계 1위를 지켜왔던 제주항공이 2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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