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숏폼이 훔쳐간 집중력…도파민의 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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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신경외과 전문의 2차 시험이 구두로 진행되던 날이다.
뇌종양, 척추, 말초신경, 뇌혈관 등 여러 과목별 방이 마련되면, 수험자는 순서대로 여러 방들을 드나들며 구두 시험을 치른다.
구두 시험이라고 운이 작용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운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2005년 신경 해부학 구두 시험에서 접했던 파울 볼과 홈런 볼의 차이를 2024년 숏폼 과다 사용 취재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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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볼과 홈런 볼
2005년 1월, 신경외과 전문의 2차 시험이 구두로 진행되던 날이다. 뇌종양, 척추, 말초신경, 뇌혈관 등 여러 과목별 방이 마련되면, 수험자는 순서대로 여러 방들을 드나들며 구두 시험을 치른다. 방에 들어가면 먼저 여러 종이들이 접혀 있는 바구니를 건네 받고 그 중 하나를 뽑는다. 거기엔 번호가 적혀 있는데, 바로 자신이 치뤄야 할 시험 문제의 번호이다. 구두 시험이라고 운이 작용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운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 방에 모인 그 분야 다섯 전문가들의 질문을 모두 받아야 하기 때문인데 운 좋게 아는 문제를 뽑아도 섣불리 알아서는 좋은 점수를 따기 어렵다. 그야말로 ‘실력이 탈탈 털리는 시험’이었다. 신경 해부학 방에서 내가 뽑은 번호는 2번이었는데, 교수님이 해당하는 문제를 읽어 주셨다.
‘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파울 볼이 돌발적으로 내 앞에 왔을 때의 뇌 반응과 타자가 잘 때린 공이 담장 넘어 홈런이 될 지 지켜볼 때 뇌 신경 회로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십시오.’
2005년 신경 해부학 구두 시험에서 접했던 파울 볼과 홈런 볼의 차이를 2024년 숏폼 과다 사용 취재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과거의 주요 포인트들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한꺼번에 연결되는 것일까?
숏폼은 1분 안팎의 짧은 영상을 말하는데,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거의 모든 플랫폼에서 제공하고 있고, 그야말로 전세계적인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런데 이 열풍에 대한 우려가 크다. 과다하게 사용해 일상에 지장을 초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를 ‘숏폼 중독’이라고 표현한다. 아직 중독이라고 판명되지는 않았지만 그 기저에는 홈런 볼과 다른 파울 볼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파울 볼을 볼 때의 뇌
공이 방망이에 맞아 ‘딱 하는 소리’를 듣고 내게 돌진하는 파울 볼을 주시하면 머리를 숙일 수 있는 것은 수동적 집중력 신경계 덕분이다. 하지만 이게 너무 활성화하면 부작용이 따른다. 주변의 볼 것과 들을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본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The default mode network is a brain system of interacting cerebral regions characterized by coordinated activations that are distinct from the activities of other brain networks. The Neuroscience of Depression, 2021).
파울 볼을 피하는 수동적인 뇌 신경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바로 홈런 볼을 볼 때 활성화되는 능동적인 뇌 신경계(Default Mode and Executive Networks Areas: Association with the Serial Order in Divergent Thinking, PLOS ONE)이다. 승부가 가려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잘 받아 친다. 그 시점부터 능동적인 뇌 신경계가 활성화돼 공의 움직임에만 몰두하게 된다. 신비롭게도 이 회로가 작동하면 공이 담장을 넘어갈 때 새가 지나가거나 함성 소리가 들려도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수동적 뇌 신경계가 거느리고 있는 시각과 청각 신경계가 억제됐기 때문이다.
수동적 신경계와 능동적 신경계는 둘 다 필요하지만 균형이 깨지기도 한다. 능동적 신경계가 오랜 시간 활성화되려면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이 둘 사이의 시소는 수동적 신경계로 기울어지기 십상이다. 이 현상을 현대의학은 집중력 부족이라고 말한다.
숏폼, 집중력을 훔치다
중국 연구팀이 숏폼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대학생의 뇌를 기능 MRI로 분석했다. 그랬더니 숏폼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은 대학생들보다 더 활성화된 부위가 나타났는데 바로 수동적 집중력의 뇌 신경계였다(Viewing personalized video clips recommended by TikTok activates default mode network and ventral tegmental area, Neuroimage)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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