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 책임 묻는다···금감원, 부동산PF 비리 증권사 우선제재 착수

송이라 기자 2024. 1. 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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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비리 대거 적발···제재심 속도
사안 따라 CEO 제재도 가능
성과급 체계 점검 결과 발표 예정
서울경제DB
[서울경제]

최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개시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금융당국이 증권사 부동산 PF 임직원의 사익추구와 미흡한 내부통제에 대한 제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적절한 내부통제를 해야할 임원이 앞장서 사적 비리를 저지른 만큼 증권사와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중징계로 이어질 지 관심이 커지는 모습이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메리츠와 하이, 다올, 이베스트, 현대차증권 등 부동산 PF 기획검사를 실시한 5개 증권사에 검사 결과를 개별 통보하고 제재 절차에 돌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른 안건보다 더 우선해서 이번 검사 결과에 대한 제재심에 착수할 예정”이라며 “사안의 경중에 따라 CEO의 징계 수위도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와 직무 정지, 문책 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통상 문책 경고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석 달간 5개 증권사 PF 기획검사를 실시한 결과 PF임원들의 사익 추구 행위와 내부통제 미흡 사례를 대거 적발했다. A증권사 PF 임원은 업무 중 알게 된 미공개 부동산 개발정보로 500억 원을 챙겼다. 해당 임원은 본인 소유 법인으로 시행사 최대주주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취득한 후 매각해 이같은 사익을 누렸다.

또다른 증권사 PF 담당 임원은 가족 법인을 만들어 900억 원대 부동산 11건을 취득하고 이중 3건을 팔아 100억 원대 매매차익을 얻기도 했다. 사실상 차명으로 회사를 차려 PF프로젝트에 지분을 태우는 한편 증권사 자금을 빌려주며 안팎으로 잇속을 챙겼다.

부동산 PF 담당자가 개발 정보를 먼저 알고 개인적으로 투자하는 건 방법만 달리할 뿐 관행처럼 이뤄졌다. 부동산 PF는 토지매입부터 인허가 과정까지의 ‘초기 브릿지론’과 착공부터 준공까지의 ‘본PF’로 구성되는데 이 과정에서 증권사는 시행사를 비롯한 다수의 관계자들 사이에서 대출기관을 주선하거나 PF구조를 자문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직접 대출에 나서거나 채무보증을 취급할 때도 있다. 통상 대형 증권사들은 인허가가 진행된 후 대출하는 본PF 비중이 높은 반면 중소형사들은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브릿지론을 주로 취급한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이던 저금리 시기 시행사와 증권사는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며 이른바 ‘그들만의 동맹’을 즐겼다. 시행사는 개발 정보를 흘려 증권사 임직원의 잇속을 채워주고 반대 급부로 손쉽게 대출을 받았다. 증권사는 쏠쏠한 이자 수익에 취해 내부통제를 소홀히 하며 이러한 관행을 사실상 방치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투자심사 기능이 약한 중소형사 위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고 사업장이 줄줄이 부실 위기에 처하면서 그들만의 동맹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증권사 임직원들의 사적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 증권사와 시행사 사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만연했던 도덕적 해이가 이제야 알려지고 있는 것”이라며 “겉으로 드러난 것 외에도 많아 모든 증권사 PF 담당자가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지원을 위한 금융권 협약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성형주 기자

금융당국은 특히 PF 담당자가 시행사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비리를 일삼는 동안 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세 검사 대상 증권사 심사부는 심사·승인받지 않은 차주에 대한 PF대출을 실행해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고 시행사가 PF대출을 받고 자금을 다른 곳에 사용해도 자금지출 용도를 점검조차 안했다. 임직원의 사익 추구 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개인 일탈로 선을 그어온 증권사 수뇌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러한 증권사 사고를 두고 “사내 정상적인 직업윤리나 통제 시스템이 종합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라며 “투자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내부 핵심성과지표(KPI)가 이익 추구 경향을 과도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국민이 수용할 수 없는 행태에 대해서는 CEO든 최고재무책임자(CFO)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 원장은 오는 24일 15개 증권사 CEO들과 신년 간담회를 갖고 부동산PF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할 계획이다.

한편 금감원은 이번 조사 결과와는 별개로 부동산 PF 관련 성과보수체계에 대한 수시 점검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송이라 기자 elalal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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