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수상 "밤의 열기속에서" 감독 노먼 주이슨( 97) 별세
영화로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저항.. 사회 정의 추구
[뉴욕= AP/뉴시스] 차미례 기자 = 미국의 원로 감독으로 도리스 데이 시절의 희극영화에서 오스카상 수상작 "밤의 열기 속에서"와 "문 스트럭"등 사회성 짙은 영화까지 수많은 영화들을 제작한 노먼 주이슨이 9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세 차례나 오스카 상을 받았고 1999년에는 평생 공로상까지 수상한 주이슨 감독은 지난 20일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그의 홍보담당 제프 샌더슨이 발표했다. 그 이상의 자세한 정보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주이슨 감독은 그의 길고 긴 영화인생 동안에 가벼운 오락물 코미디에서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진 여러가지 주제의 영화들을 다양하게 제작했다.
캐나다 해군에서 2차세계대전 동안 군 복무를 마친 주이슨은 히치 하이킹으로 미국 남부를 여행하면서 흑백 갈등과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철저히 경험했다.
주이슨 감독의 자서전 " 이 끔찍한 일이 내게는 좋은 일이되었다" (This Terrible Business Has Been Good to Me)에는 인종차별과 불평등이 자신의 작품의 가장 공통된 주제가 된 사연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가 나올 때 마다 미국인들 다수는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나는 인종차별과 편견, 불평등을 척결하지 않고는 선악과 옳고 그름을 절대로 분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고 그는 기술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들을 1967년작 "밤의 열기 속에서"에 표현했다. 로드 스타이거가 미시시피주 시골 출신의 백인 우월주의자 보안관으로 , 시드니 포이티어가 필라델피아에서 온 흑인 형사로 등장해서 함께 살인사건을 해결하다가 결국 경찰로서의 동료애를 느끼게 되는 스토리이다.
제임스 볼드윈은 그 영화가 "현실과 너무 어이없게 동떨어진 영화"라고 평하며 감독이 인종간 화합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오히려 "흑인들의 분노와 절망"만 부추겼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는 강력하고 새로운 영감을 주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그 영화를 제작할 때 격려해 준 사람 중에는 아이다호 선밸리의 스키 여행때 만났던 로버트 F. 케네디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영화 내용을 설명하면서 인종간 화합과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주제로 한 것이라고 말하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그러면서 '노먼, 무엇이든 타이밍이 중요해요. 정치도, 예술도, 인생 자체도 마찬가지예요"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을 평생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그는 회고했다.
주이슨 감독의 작품 중 다른 두 편의 오스카 추천작은 "지붕 위의 바이얼린" "문스트럭" 등 로맨틱 코미디들도 있다.
덴젤 워싱턴을 발굴해 제작한 "한 군인의 이야기" "허리케인"과 스티브 매퀸의 탐정물 "토머스 크라운 사건" 등도 그의 히트작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노년의 주이슨은 워싱턴을 주연으로 한 세 번째 영화인 1990년대 초의 '말콤 X'를 제작하려다 불발로 끝났다. 그 영화의 감독은 백인이 맡아서는 안된다는 반대파의 항의로 한 발 물러났고 스파이크 리가 감독을 맡아 완성했다.
주이슨과 아내 마가렛 앤 딕슨 (별명 딕시)는 아들 케빈과 마이클, 딸 제니퍼 앤 등 3남매를 두었다. 딸은 배우로 성장해 주이슨의 영화 "신의 아그네스"와 " 베스트 프렌즈"에 출연했다.
주이슨 부부는 51년을 해로했고 부인이 2004년 사망한 뒤 주이슨은 린 세인트 데이비드와 2010년 재혼했다.
고국 캐나다에서 2003년 국가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한 주이슨은 언제나 캐나다 토론토 근처의 광대한 자기 목장에서 살기를 좋아했다. 말과 소등 목축을 하면서 메이플 시럽을 만들기도 했다.
1988년에는 캐나다 필름센터를 건축하고 토론토 국제영화제가 열릴 때 마다 바비큐를 참가자들에게 대접했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주이슨은 6살 때 처음 연극 무대에 섰고 빅토리아 칼리지를 졸업한 뒤 영국에 가서 BBC에서 일하다가 캐나다로 돌아와 CBC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PD로 일했다.
그의 작품을 본 할리우드 인사의 제안으로 미국에 진출했고 TV뮤지컬 감독으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출연한 스타 들 중엔 주디 갈런드, 대니 케이, 해리 벨라폰테 등이 있다.
주이슨은 1963년 영화계로 자리를 옮겨 토니 커티스가 출연한 "40파운드의 트러블" 등을 제작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유니버설 영화사가 그 후 여러 코미디 영화를 제작하게 했고 그는 1965년부터는 MGM으로 옮겨가 "러시아인들이 온다, 러시아인들이 온다" 등 명작들을 감독했다.
주이슨감독은 2011년 "할리우드 리포터"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한번도 내가 원했던 기성 체제의 일부가 되어 본 적이 없다. 나는 사람들이 좋은 영화라고 말해주기를 바랬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나 역시 남들과 똑같이 이기적이란 뜻이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완전하게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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