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수상 "밤의 열기속에서" 감독 노먼 주이슨( 97) 별세

차미례 기자 2024. 1. 23. 07:1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붕위의 바이얼린 " "문스트럭"등 히트작 수십 편
영화로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저항.. 사회 정의 추구
[로스앤젤레스= AP/뉴시스] 노먼 주이슨 감독(가운데)이 201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TCM국제영화제에 아내 린 세인트 데이비드와 결혼 50주년을 기념해 함께 참석한 모습. 오스카상에 5번이나 추천되었고 1999년에는 평생공로상 부문으로 수상했던 그는 1월 20일 조용히 영면에 들었다고 그의 홍보팀이 발표했다. 2024.01.23.

[뉴욕= AP/뉴시스] 차미례 기자 = 미국의 원로 감독으로 도리스 데이 시절의 희극영화에서 오스카상 수상작 "밤의 열기 속에서"와 "문 스트럭"등 사회성 짙은 영화까지 수많은 영화들을 제작한 노먼 주이슨이 9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세 차례나 오스카 상을 받았고 1999년에는 평생 공로상까지 수상한 주이슨 감독은 지난 20일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그의 홍보담당 제프 샌더슨이 발표했다. 그 이상의 자세한 정보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주이슨 감독은 그의 길고 긴 영화인생 동안에 가벼운 오락물 코미디에서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진 여러가지 주제의 영화들을 다양하게 제작했다.

캐나다 해군에서 2차세계대전 동안 군 복무를 마친 주이슨은 히치 하이킹으로 미국 남부를 여행하면서 흑백 갈등과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철저히 경험했다.

주이슨 감독의 자서전 " 이 끔찍한 일이 내게는 좋은 일이되었다" (This Terrible Business Has Been Good to Me)에는 인종차별과 불평등이 자신의 작품의 가장 공통된 주제가 된 사연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가 나올 때 마다 미국인들 다수는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나는 인종차별과 편견, 불평등을 척결하지 않고는 선악과 옳고 그름을 절대로 분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고 그는 기술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들을 1967년작 "밤의 열기 속에서"에 표현했다. 로드 스타이거가 미시시피주 시골 출신의 백인 우월주의자 보안관으로 , 시드니 포이티어가 필라델피아에서 온 흑인 형사로 등장해서 함께 살인사건을 해결하다가 결국 경찰로서의 동료애를 느끼게 되는 스토리이다.

제임스 볼드윈은 그 영화가 "현실과 너무 어이없게 동떨어진 영화"라고 평하며 감독이 인종간 화합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오히려 "흑인들의 분노와 절망"만 부추겼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는 강력하고 새로운 영감을 주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그 영화를 제작할 때 격려해 준 사람 중에는 아이다호 선밸리의 스키 여행때 만났던 로버트 F. 케네디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영화 내용을 설명하면서 인종간 화합과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주제로 한 것이라고 말하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그러면서 '노먼, 무엇이든 타이밍이 중요해요. 정치도, 예술도, 인생 자체도 마찬가지예요"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을 평생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그는 회고했다.

주이슨 감독의 작품 중 다른 두 편의 오스카 추천작은 "지붕 위의 바이얼린" "문스트럭" 등 로맨틱 코미디들도 있다.

[뉴욕= AP/뉴시스] 1971년 "지붕위의 바이얼린 "시사회에 참석한 노먼 주이슨 감독. 2024.01.23.

덴젤 워싱턴을 발굴해 제작한 "한 군인의 이야기" "허리케인"과 스티브 매퀸의 탐정물 "토머스 크라운 사건" 등도 그의 히트작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노년의 주이슨은 워싱턴을 주연으로 한 세 번째 영화인 1990년대 초의 '말콤 X'를 제작하려다 불발로 끝났다. 그 영화의 감독은 백인이 맡아서는 안된다는 반대파의 항의로 한 발 물러났고 스파이크 리가 감독을 맡아 완성했다.

주이슨과 아내 마가렛 앤 딕슨 (별명 딕시)는 아들 케빈과 마이클, 딸 제니퍼 앤 등 3남매를 두었다. 딸은 배우로 성장해 주이슨의 영화 "신의 아그네스"와 " 베스트 프렌즈"에 출연했다.

주이슨 부부는 51년을 해로했고 부인이 2004년 사망한 뒤 주이슨은 린 세인트 데이비드와 2010년 재혼했다.

고국 캐나다에서 2003년 국가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한 주이슨은 언제나 캐나다 토론토 근처의 광대한 자기 목장에서 살기를 좋아했다. 말과 소등 목축을 하면서 메이플 시럽을 만들기도 했다.

1988년에는 캐나다 필름센터를 건축하고 토론토 국제영화제가 열릴 때 마다 바비큐를 참가자들에게 대접했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주이슨은 6살 때 처음 연극 무대에 섰고 빅토리아 칼리지를 졸업한 뒤 영국에 가서 BBC에서 일하다가 캐나다로 돌아와 CBC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PD로 일했다.

그의 작품을 본 할리우드 인사의 제안으로 미국에 진출했고 TV뮤지컬 감독으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출연한 스타 들 중엔 주디 갈런드, 대니 케이, 해리 벨라폰테 등이 있다.

주이슨은 1963년 영화계로 자리를 옮겨 토니 커티스가 출연한 "40파운드의 트러블" 등을 제작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유니버설 영화사가 그 후 여러 코미디 영화를 제작하게 했고 그는 1965년부터는 MGM으로 옮겨가 "러시아인들이 온다, 러시아인들이 온다" 등 명작들을 감독했다.

주이슨감독은 2011년 "할리우드 리포터"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한번도 내가 원했던 기성 체제의 일부가 되어 본 적이 없다. 나는 사람들이 좋은 영화라고 말해주기를 바랬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나 역시 남들과 똑같이 이기적이란 뜻이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완전하게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mr@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