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으로 드러나는 황금항로…북극 몰려가는 러·중

홍석재 기자 2024. 1.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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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기획 북극 해빙과 새 각축지대
쇄빙선이 바다얼음이 떠 있는 북극해를 가로지르고 있다.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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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가 녹으면서 북극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새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 시엔엔(CNN)은 지난달 20일 전 인류의 근심거리인 ‘기후 재앙’으로 인한 북극 해빙을 유독 러시아와 중국이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방송은 “(노르웨이) 트롬쇠 항구에서 수백마일 떨어진 러시아 콜라반도에는 러시아 북부 함대가 있다. 여러 척의 탄도미사일 잠수함과 순양함·구축함·초계함을 비롯한 병력, 비행장, 기타 군사 자산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경 근처에 밀집해 있다”고 했다. 빙하가 녹아내린 뒤 이동이 자유로워진 북극해를 통해 러시아가 최근 나토에 가입하며 자신을 적으로 돌린 북유럽 국가들(핀란드는 지난해 4월 추가 가입, 스웨덴은 가입 절차 진행 중)에 안보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나아가 현재 진행 중인 가자전쟁으로 지중해와 인도양을 직접 잇는 홍해 항로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아시아-유럽, 북미-유럽 어느 쪽으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북극 항로가 새 ‘얼음 위(氷上)의 실크로드’로 주목받고 있다.

북극을 끼고 대형 수송선 이동이 가능한 북극 항로(NSR) 중 북미·유럽을 잇는 북서항로(NWP)와 아시아·유럽을 잇는 북동항로(NEP) 상당 부분이 러시아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에 포함돼 있다. 특히 한국 등 극동에서 유럽으로 가는 항로의 경우 북동항로(1만5천㎞)는 수에즈운하 경로(2만㎞)보다 훨씬 짧다.

북극권의 사전적 정의는 북위 66.3° 위쪽의 바다와 육지를 의미한다. 이곳은 오랫동안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동토’였다. 하지만 지구 다른 지역에서 이어지는 첨예한 갈등이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이른바 ‘북극 예외주의’가 적용된 지역이기도 했다. 이 거대한 얼음땅은 군사 강국들이 이 지역을 거쳐 다른 대륙을 넘나들지 못하게 하는 전략적 완충지대 구실을 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북극권엔 전세계 미개발 천연가스의 30%, 석유의 13%가 잠자고 있다. 북극에 영토를 가진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미국 등 8개 나라는 1996년 ‘북극 이사회’를 만들어 이 자원을 평화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공동 개발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듯했다.

북극 개발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3년 ‘2020년까지 러시아 연방의 북극권 개발과 안보 전략’ 등을 발표해 적극적인 북극 개발에 나섰다.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이 최근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기후 온난화로 북극의 해빙이 본격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구와 갈등이 첨예화됐기 때문이다.

북극 개발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북극 항로의 상업적 이용이다. 북극 빙하는 최근 10년마다 13% 비율로 사라지고, 이르면 2040년 얼음 없는 여름이 올 수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는 2022년 8월 ‘2035년까지 북극 항로 개발 계획’을 발표해 2035년엔 이 바다를 통한 운송량을 현재의 4배인 2억7천만t으로 올린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벨퍼센터는 “우크라이나 전쟁 뒤 러시아에 부과된 서방의 제재와 많은 외국 기업의 철수로 러시아의 북극 프로젝트의 가동이 지연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도, “유럽에서 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북극을 통해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19년 4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5차 국제 북극 포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크렘린 제공

나아가 러시아는 이 항로를 북극권에서 생산한 에너지 수출에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러시아는 북극권에서 전체 천연가스 생산량의 83%, 석유 17%를 생산한다.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20%가량이 여기서 나온다. 러시아는 2018년부터 북극권 야말반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이 항로를 통해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최근 정세 변화와 맞물려 우려를 모으는 것은 북극해의 군사적 이용 가능성이다. 15년쯤 뒤에는 북극해의 빙하가 녹아 이 바다에서 태평양·대서양에서처럼 보통의 군사 활동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싱크탱크 저먼마셜펀드(GMF)는 지난해 8월 보고서에서 “북극은 이제 강대국 간 경쟁을 관리하며 투명성, 예측 가능성 강화와 신뢰 구축 조처가 필요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유럽 국가들은 북극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러시아에 적잖은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북극의 석유와 가스 프로젝트가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폭격기들이 북극 기지에서 이륙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은 지난달 20일 “러시아가 (핀란드와 국경을 맞댄) 북극 해안 콜라반도에 함대, 상당수 핵무기, 미사일 시설, 비행장, 레이더 기지를 배치했다”며 “인근 노바야제믈랴제도부터 제믈랴알렉산드라섬에서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본거지인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로 연결되는 지역에 10년간 옛 소련의 노후 군사시설을 개조하고 새 기지를 건설하며, 극초음속 미사일부터 핵어뢰 드론에 이르는 새 무기 시험장을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현재도 핵추진 쇄빙선을 포함해 전세계 쇄빙선의 절반 가까운 50척 이상을 운영하며 북극에서 최강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 역시 북극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2018년 ‘중국의 북극 전략 백서’에서 중국이 지리적으로 북극권에 가장 가까운 대륙 국가의 하나인 ‘북극권 근접 국가’이자 ‘중요한 이해당사국’이라는 입장을 냈다. 중국은 이 문서에서 “북동, 북서, 중앙 항로로 구성된 북극 항로는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국제 무역의 중요한 운송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 ‘일대일로’의 북극판 계획인) ‘빙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2021년 시작된 제14차 5개년 계획에는 “북극의 실무협의에 관여해 빙상 실크로드를 건설하겠다”고 명기했다. 중·러는 2017년 7월 정상회담에서 북극 항로 개발을 위한 협력을 약속한 뒤 이를 실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처럼 북극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면서 북극항로 개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쇄빙선이 북극의 빙하를 깨고 나아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미국 역시 최근 급변한 북극의 전략적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10월 새 ‘북극 전략’을 공개해 이 지역을 둘러싼 “전략적 경쟁이 격렬해지고 있다”며 동맹국들과 함께 국제법과 규범에 기초한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나아가 중국과 관련해선 “북극에 대한 영향력을 얻기 위한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며 “미국은 효과적으로 경쟁하면서도 긴장을 관리하는 입장”을 취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미국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지난 3일 “러시아와 중국이 빙하가 빠르게 녹는 북극에서 더 공격적 태도를 취하면서 펜타곤(미 국방부)에 적신호가 켜졌다”며 “미국이 북극 정책과 훈련을 재설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북극권에 본토 방어를 위한 핵심 전략 지역인 알래스카란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북극 빙하가 없으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엔 직행 고속도로가 뚫리게 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5일 “냉전 이후 미국은 북극에서 존재감이 크게 약화된 반면 러시아와 중국 등은 경제·군사적 역량을 투자하고 있다”며 “러시아 본토는 알래스카 서해안에서 60마일(97㎞)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미국과 북유럽 국가들의 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중이다. 지난달 5일 스웨덴을 시작으로 핀란드(18일), 덴마크(19일)가 미국과 다년간의 방위협력협정(DCA)을 맺었다. 특히 러시아와 길이 1300㎞가 넘는 국경을 마주하는 핀란드는 북극 빙하가 없으면 불과 1천㎞ 거리에 있는 노바야제믈랴제도에서 러시아 함대와 맞닥뜨리게 된다. 사흘 뒤인 22일에는 발트 3국이 미국과 기존 방위협정을 갱신했다. 미국은 이 협정을 통해 유사시 이 세 나라의 군사기지를 활용할 수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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