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버려야 메타버스 산업 산다?
정부가 메타버스를 게임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규제 움직임을 보이자 관련 업계가 “산업 생태계를 죽이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게임은 일부일뿐 메타버스는 게임이 아니다”라는 업계와 “게임이 들어가있는데 게임법 적용을 배제해달라는 의견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문체부가 맞서는 형국.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또다른 한편에서는 “애초에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관련 산업이 가져와 쓴 것이 오늘의 혼란을 초래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 “메타버스는 게임 아냐” vs “게임 요소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7일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K-메타)를 비롯해 네이버제트, 통신3사, 메타버스 사업을 하는 교육·의료 플랫폼 등 중소업체들과 만나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는 게임 요소를 갖춘 메타버스 플랫폼을 게임법으로 규제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가이드라인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문체부는 메타버스가 규칙과 경쟁, 결과에 따른 보상 등 게임과 유사한 형태가 많기 때문에 게임법으로 규제를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요 사업자들은 “메타버스는 게임이 아닐뿐더러,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경우 메타버스 산업이 무너진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적으로 이날 통신업계는 “우리가 만든 플랫폼 내 게임의 비중이 5~10% 미만으로 극히 적고, SNS 소셜(소통) 활동이 주가 된다”면서 “게임 비중 자체가 적은데 게임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다양한 분야의 사업자들은 “국내 메타머스 사업 확장은 물론 글로벌 진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인인증, 과몰입방지, 등급분류 등 게임물 관련 규제를 적용한다면 현재 추진하는 사업이 축소 또는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 다양한 콘텐츠가 있는데 게임 콘텐츠가 없으면 당연히 게임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며 “게임이 들어가있는데 게임법 적용을 배제해달라는 의견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선을 그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 “모호한 용어 ‘메타버스’ 버려야”
문체부와 업계간 논란 속에 “가상현실(VR·AR·XR) 산업계가 맞지도 않는 용어를 외피로 가져다 쓰면서 초래한, 예견된 결과”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동현 가상현실콘텐츠산업협회 명예회장(전 게임종합지원센터(현 한국콘텐츠진흥원) 소장)은 “메타버스는 1990년대 초반 가상현실 기술의 태동 시기에 그 기술의 미래 비전을 보고 SF 소설가가 명명한 세계관으로 비지니스 모델과는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랬던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21년 초, ‘로블록스’(Roblox)라는 MMORPG 게임이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주가관리를 위해 다른 MMORPG와의 차별화 전략으로 ‘자신들의 게임은 MMORPG 게임이 아니라 메타버스’라고 주장하면서부터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미국·유럽 등에서 ‘메타버스는 MMORPG 게임의 한 장르’로 인식하는 것이 대세라고.
하지만 국내에서는 ‘듣기에도 멋있는’ 메타버스가 미래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받아들여지면서, 정부는 예산 수립을 위해, 또 기존 가상현실 업계는 예산을 받기위해 이를 활용한 것이 지금의 혼란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김 명예회장은 “메타버스 붐에 편승해 가상현실 산업에서 메타버스산업으로 이름을 바꾼 것을 다시 돌려 산업의 정체성을 찾고 이에 걸맞는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관련 산업이 피지도 못하고 꺾이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애플과 메타가 관련 기기를 출시하면서 시장조사기관 IDC는 올해 XR·VR·AR 시장이 지난해보다 47%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메타버스 산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사업을 추진하던 게임사들이 연이어 담당 인력과 조직을 축소하고 있다.
조진호 기자 ft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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