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이혼에 자녀 생존 위협받는 나라…‘양육비 이행 법안’은 국회서 잠 잔다

오세진 기자 2024. 1. 2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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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소위는 지난해 6월 이후로 안 열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들이 2020년 11월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누리집 ‘배드파더스’를 비공개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 접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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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1840만원.’ 14년째 홀로 두 딸을 키우는 임아무개(39)씨 전 남편인 김아무개(43)씨에게서 받지 못한 양육비 액수다. 김씨는 2009년 이혼 당시 작성한 양육비 부담조서에 따라 매달 양육비로 70만원씩 임씨에게 지급해야 하지만, 이혼 2년 뒤에 60만원을 지급한 게 전부다. 그 뒤로 김씨는 종적을 감췄다. 전화번호를 수시로 바꾸며 임씨 연락을 피하고 있다.

2011년 김씨가 양육비 60만원을 낸 건, 법원이 감치명령(양육비 이행명령을 따르지 않은 사람을 경찰서 유치장 또는 교도소, 구치소 등에 가두는 것)을 결정해 5일동안 감치된 이후다. 법원은 2021년에도 김씨의 감치를 결정했지만, 집행되진 못했다. 김씨의 집(등록 거주지)에 그의 부모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 부모는 감치 집행을 하러 온 경찰에게 “아들이랑 연락이 안 된 지 5년 됐다. 우리도 (어딨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감치 집행 기간인 6개월 동안 김씨의 실거주지를 찾지 못한 탓에 결국 김씨는 감치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양육비를 받기까지 왜 이리 힘든 걸까요.” 임씨가 22일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 2020년 5월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는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2021년 7월부터 명단공개 등의 행정제재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처럼 제재 대상에 올라도 양육비 지급을 안 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2021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명단공개와 출국금지·운전면허 정지 요청 제재를 받은 양육비 미지급자 504명(중복 제외) 가운데, 양육비를 전부 지급한 비율은 4.6%(23명)에 불과하다. 504명이 지급하지 않은 양육비는 약 246억원 규모다.

그나마 이런 행정제재 조처라도 받아내기 위해선 가정법원의 감치명령 결정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조건이 까다로워 법원의 감치명령 신청 승인 비율이 절반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다. 여가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낸 감치명령 신청 2559건 가운데 법원이 감치를 결정한 사건 비율은 59.2%(1516건) 수준이다. 현행법상 법원으로부터 감치명령 결정을 받아야 비양육자에게 양육비 채무 불이행을 이유로 형사고소를 할 수 있는데, 그럴 수조차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이행원이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선 비양육자의 소득·재산 정보 및 금융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데, 현재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비양육자가 이행원의 소득·재산 조사에 동의한 비율은 고작 4.3%(1만4086건 중 606건)이다.

“은행 가서 그 사람 재산을 확인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하죠.” 2014년에 이혼한 남편 신아무개(50)씨에게 현재까지 양육비 총 7620만원을 받지 못한 홍아무개(48)씨가 말했다. 신씨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양육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온라인 게임에 빠져 아이템 구매를 위해 현금을 쓰는 일이 많았고, 가사·돌봄 노동은 뒷전이었다. 아이템 구매에만 몇천만원을 썼다고 한다. 신씨는 또 홍씨 명의 카드를 쓰며 각종 빚을 냈다. 상환 부담은 이혼 후 오롯이 홍씨 몫이 돼버렸고, 홍씨는 1억원에 달하는 빚을 갚는 데에만 7년이 걸렸다고 했다.

홍씨가 빚 외에도 직장 생활과 독박 육아, 이로 인한 과로 등에 짓눌려 있는 사이, 예술가인 신씨는 유튜브에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그가 만든 예술작품과 그가 연 전시회, 작품 활동 등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참다못한 홍씨가 2022년 12월 신씨를 양육비이행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해, 신씨는 지난해 7월 불구속 기소됐다. 신씨는 재판에서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라며 양육비를 지급할 돈이 없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전시회도 계속하고 있는데, 돈이 없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작품이 팔리면 양육비를 주겠다’고 하고선, 제 연락을 아예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의 감치명령 결정 없이도 양육비 이행명령 결정 단계에서 행정제재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고, 양육비 채무자의 동의 없이도 소득·재산 조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등 27개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하지만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법안 심사 첫 단계인 여가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지난해 6월 이후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아, 법안들은 장시간 심사·처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여야는 23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기로 잠정 합의했다가 안건 등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회의는 무산됐다.

국회가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과 한부모가족 생존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도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는 “비양육자 감치결정을 받아내기까지 최소 3∼4년이 걸린다. 부디 법 하나라도 통과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한부모가정 아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양육비 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국회가 보여달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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