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발뺀 CES…한국기업은 ‘스펙 쌓기’ 코스로

최우리 기자 2024. 1. 2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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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국 역대최대 참가 속 무용론 이유는
시이에스 2024 통합한국관. 지방자치단체와 많은 국내 대학들이 부스를 차렸다. 라스베이거스/최우리 기자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저도 너무 궁금해요.” (시이에스 전시관 앞에서 만난 한국 스타트업 직원)

대기업과 스타트업 등을 가리지 않고 국내 기업 인사들이 연초가 되면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게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매해 1월 세계 최대 아이티(IT)·가전 전시회 ‘시이에스’(CES)가 열리는데, 올해는 역대 가장 많은 한국인이 찾으며 주목을 받았다. 최근 이에 대해 ‘참가 무용론’ 논쟁이 불붙었는데, 한편에선 참가를 안 하면 업계에서 자신만 뒤처질 것 같다는 이른바 ‘포모(FOMO)증후군’ 때문에 경쟁적인 참여를 불러왔다고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선 해외에 진출하고 싶은 스타트업 꿈나무들에 찬물을 뿌리는 비난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 올해 한국 기업의 참여와 성과는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시이에스를 주관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에 직접 참가 신청한 대기업 등을 제외한 한국 참여 기업 수는 2019년 168곳에서 올해 443개로 크게 늘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이에스 2024가 열린 베네시안호텔 정문 입구에 한국 광고 현수막이 걸려있다. 라스베이거스/최우리 기자

삼성전자·엘지(LG)전자·현대차그룹·에스케이(SK)그룹·두산그룹 등 주요 대기업은 눈에 띄는 위치에 대규모 전시관을 차렸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등이 운영하는 통합한국관에는 443개 기업과 대학, 지방자치단체 등이 모였다.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오르는 시이에스 기조연설에는 정기선 에이치디(HD)현대 부회장이 올랐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등도 직접 라스베이거스를 찾았다.

시이에스에서 혁신상을 받은 한국 기업도 이번에 가장 많았다. 올해 133곳이 수상해, 2019년 8곳에서 16배 늘었다. 수상 기업을 나라별로 보면, 한국의 비중은 절반에 가깝다.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유레카관의 절반도 한국이 채웠다. 시이에스가 한국에 제일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미 캘리포니아에서 정보통신기업을 운영하는 패트릭 우씨는 “한국 기업 부스가 올해 시이에스를 끌고 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인공지능 기반 3디(D)센싱 솔루션 스타트업인 ‘딥인사이트’의 지인찬 이사는 “한국 아이티(IT) 기업들 사이에서 시이에스는 확실히 유행이 됐다”고 했다.

시이에스 2024 통합한국관의 한 부스. 라스베이거스/최우리 기자

그러나 혁신적인 기업이 많기로 유명한 실리콘밸리에서 멀지 않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행사의 광경이 한국으로 ‘도배’되는 건 따져볼 만한 일이다. 애플은 그동안 시이에스에 참가한 적이 없고, 엔비디아도 한때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직접 전시관을 찾기도 했지만 최근엔 관심이 줄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국외 주요 언론들도 국내 대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소개한 신기술과 제품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9일 ‘시이에스는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칼럼을 실어 이를 꼬집기도 했다. 알렉스헌 기술·과학 전문기자는 칼럼을 통해 “더이상 시이에스는 미래를 보는 곳이 아니라 그 미래가 어떻게 수천 개의 값싼 플라스틱 모조품으로 복사될 것인지를 배우는 곳이 되었다”고 했다.

이번 시이에스에 참여한 대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도 ‘과시’와 ‘추격’에 대해 짚었다. 그는 “글로벌 빅테크는 시이에스에서 기술을 보여주는 게 차별화가 안 되니 더이상 나오지 않는 듯하다”면서 “과거 패스트팔로워 때는 한국 기업이 얼마나 기술이 향상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장으로 유용했지만, 퍼스트 무버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시이에스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고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중국 가전업체들은 이번에도 삼성·엘지 전시관 옆에 전시관을 차리고, 추격한 기술력과 함께 낮은 가격을 바이어 등에게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스타트업의 시이에스 참여 ‘무용론’이 나타난 배경엔 국내 스타트업 진흥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성과 홍보’가 숨어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원하고 육성한 스타트업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에서 ‘시이에스 혁신상’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공 확률이 낮은 스타트업 특성상 매출과 수익 등의 ‘숫자’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관련 일을 해온 김진환 박사(기술경영학)는 “기관 등에서 경쟁적으로 시이에스 참가를 장려하기보다 해외시장에 진출할 준비가 된 곳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이에스 참가가 도움된다고 판단되면 스타트업 자신들 돈으로 참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이에스에 온 한 국내 대학교수(기계공학과)는 “애플 같은 기업은 이런 행사에 참여하지 않아도 늘 주목받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주목받을 기회가 적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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