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대출 문턱 정보도 비대칭… “소비자 선택권 보장돼야” [심층기획-‘대환대출 인프라’ 소극적인 5대銀]

이강진 2024. 1. 2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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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대출 1월초부터 주담대까지 확대
7개 플랫폼·32개 금융사 인프라에 동참
뜨거운 관심 불구 대형은행 입점 소극적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조성 갈 길 멀어
5대은행 “시장상황 등 고려 검토” 관망
빅테크 기업에 종속 우려 목소리도 커
“수수료 소비자에 전가 땐 되레 역효과”
전문가들 “소비자 위해선 활성화 시급”
“국민의 입장에서 대출의 벽은 여전히 높고, 정보의 비대칭은 만연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민생토론회에서 은행권의 독과점 문제를 거론하며 이같이 말했다. 여태껏 금융소비자들이 은행별 대출 금리나 상환 조건 등을 쉽게 비교하기 어려워 은행 간 경쟁이 제한적이었던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부는 은행권의 공정한 경쟁 체제를 조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환대출 인프라’를 내세우고 있다.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여러 금융사의 대출 조건 등을 비교해 본인에게 맞는 상품을 찾고, 해당 상품으로 손쉽게 갈아탈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대출비교 플랫폼을 통해 다수 상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핵심이다. 윤 대통령은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바꾸는 데 있어 금융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이 이뤄질 수 있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 초 대환대출 인프라 이용 대상 상품이 아파트 주택담보대출로까지 확장되며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이 높은 대형 시중은행들은 아직 대출비교 플랫폼 입점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핀테크 업계에선 주요 은행의 적극적 참여가 없으면 플랫폼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은행권에선 ‘빅테크(거대 정보기술)’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다양한 금융사의 참여와 플랫폼의 시장지배력 남용 억제 모두 소비자 편익 증대와 연결되는 만큼 양측의 의견을 잘 조율해 나가야만 대환대출 인프라의 지속가능성 확보가 가능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5대 은행 모두 입점’ 플랫폼 無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신용대출 상품을 대상으로 출시된 대환대출 인프라는 지난 9일 아파트 주담대에 이어 오는 31일 전세대출로까지 확대된다. 아파트 주담대 대환대출 인프라에는 총 7개의 대출비교 플랫폼과 32개 금융사가 참여한다.

대환대출 인프라는 소비자들의 정보 탐색 비용은 줄이고 금융사 간 경쟁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그간 소비자들은 여러 금융사의 영업점이나 애플리케이션(앱)을 직접 돌아다니며 본인에게 유리한 대출 조건을 찾아야 했는데, 이 인프라로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됐다.

플랫폼을 통한 비교가 활성화할 경우 금융사들의 금리 경쟁으로 소비자의 대출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도 낼 수 있다. 대출비교 플랫폼은 고객의 기존 대출과 인프라 참여 금융사들의 신규대출 금리 등을 비교하고 가장 유리한 조건의 신규대출을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해 금리를 비교해서 손쉽게 갈아타게 하면 (은행권의) 경쟁 체제가 되는 것”이라며 “경쟁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쓰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진단했다.
주목할 점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대출비교 플랫폼 입점 여부다. 7개 주담대 대환대출 비교 플랫폼(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핀다·핀크·뱅크샐러드·에이피더핀) 중 아직 5대 은행이 모두 입점한 곳은 없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4곳씩,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은 2곳씩 입점했다. KB국민은행은 카카오페이와만 제휴를 맺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추가 플랫폼 입점은) 시장 상황이나 소비자 반응을 보고 추후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5대 은행 자체 앱에서도 타 금융사의 기존 대출을 조회하고 자사의 대출 상품으로 대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플랫폼에서처럼 여러 금융사의 상품을 한눈에 비교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핀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플랫폼에서) 더 많은 상품을 접하기 위해선 은행들의 활발한 참여가 중요하다”며 “계속해서 (5대 은행의 참여가) 활성화돼야 플랫폼이 더 잘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연합뉴스
◆“은행의 플랫폼 종속 우려 커”

주요 은행들이 플랫폼 입점에 소극적인 데는 향후 빅테크 기업에 은행이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소비자들과의 접점이 빅테크가 운영하는 플랫폼에 모두 넘어갈 경우 은행들은 상품 제조업자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에겐 대출이 가장 핵심적인 상품 중 하나인데, 플랫폼 기업들에 판매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 자체가 엄청난 리스크”라며 “은행 입장에선 플랫폼에 종속되는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금리 인하 경쟁이 지나치게 심화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빅테크 플랫폼이 시장지배력이 커지면 중개수수료를 올려 결국 소비자 비용이 늘어나거나 편향된 알고리즘으로 소비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비교 플랫폼의 대환대출 서비스 성공을 위한 고려사항’ 보고서에서 “대출비교 플랫폼이 실제 대출이자를 낮추고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플랫폼 자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다만 정 연구위원은 “플랫폼의 시장지배력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경우에는 플랫폼 운영에서 발생하는 수수료가 소비자에게 전가돼 소비자 후생이 감소할 위험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대출 상품의 비교·추천 알고리즘 검증을 의무화했다”며 “대출비교 플랫폼이 금융사로부터 받는 중개수수료가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플랫폼별로 중개수수료율을 홈페이지에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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