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님'·'버스폰' 사라졌지만 모두가 손가락질했던 그 법…단통법 10년
시장은 정화됐지만…이통사간 경쟁 사라지면서 활력 떨어져
법안 전면 폐지 추진…'요금할인'은 시행 법 이관 통해 지속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SNS 이용에 능통한 A씨는 소위 '발품족'이다. TV든 냉장고든 발품을 팔아 정보를 찾는 만큼 싸게 사는 게 합리적이라는 게 평소 그의 지론이다. 정작 가격이 100만원을 웃도는 스마트폰만 그렇게 구입할 수 없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 이통사들이 더 싸게 팔겠다는 데 이를 정부가 막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 B씨는 단통말기유통법 시행 전 늘 '호갱'이었다. 친구들은 온라인에서 발빠르게 정보를 얻어 '0원 폰'으로 사기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유통점에 속아 늘 비싼 요금제만 가입했다. 법이 시행되면서 이같은 차별이 사라져 마음이 편했다. 특히 스마트폰을 한번 구입하면 5년 이상 쓰는 소비 습관이 있는데, 지원금을 받는 대신 25%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게 가장 좋았다.
말 많고 탈 많던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이 10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정부가 단통법 전면폐지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소비자들이 차별 없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입한 제도지만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보조금 경쟁 위축으로 저렴하게 단말기를 살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한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정부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단통법 폐지안을 발표했다. 지원금 공시와 추가지원금 상한을 없애 스마트폰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휴대폰 구매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불법 날뛰던 휴대폰 시장…'호갱' 방지 취지로 도입
단통법은 2014년 10월 차별적인 단말기 지원금을 없애자는 취지로 시행됐다.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마케팅비를 대대적으로 투입해 가입자 뺏기 경쟁을 벌였다. 주말마다 '스마트폰 대란'이 벌어지던 시절이다.
법 시행 전 이통3사가 쓴 마케팅 비용은 한 해에 대략 5조~6조원에 달한다.
과거 휴대폰 실구매가는 유통점 보조금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같은 100만원짜리 휴대폰을 누구는 거의 공짜에 샀다면, 어떤 이는 제 값을 다 지불했다. 대개 온라인에 게릴라성으로 공지된 성지점을 잘 찾는 이들이 공짜에 사는 경우가 허다했다.
표인봉(페이백), 버스폰, 퇴근폰 등의 단어가 이 때 나왔다. 표면상으로는 제 값을 주고 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정기간 뒤에 돌려줬다. 버스폰은 버스비 정도로 싸게 구입한다는 뜻이며, 퇴근폰은 이통사가 과다한 보조금을 얹어준 휴대폰으로 유통망이 하루 목표량을 빠르게 판매하고 일찍 퇴근한다는 뜻이다.
당시에도 정부의 보조금 가이드라인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가 이통3사에 1000억여 원대 역대급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지만 이보다 가입자 모집을 통해 얻는 실익이 더 컸던 것이다.
전국에 걸쳐 ‘호갱(호구+고객)’이 양산된 것도 이런 보조금 때문이다. 제 값을 주고 산 사람은 호갱 취급을 당했다. 심지어 싸게 산 것처럼 눈속임을 하고 비싼 요금제와 부가서비스 가입까지 이뤄진 피해 사례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이에 한 달 번호이동 건수가 130만 건에 육박하기도 했다.
지원금 차별 없애고 요금 할인까지 vs 시장 활력 저하 비판도
휴대폰 할인을 위해 제공하는 지원금은 ‘공시’를 의무화했다. 시행 초기 신규 단말에 대한 지원금 상한을 뒀으나 2017년에 이를 없앴다. 대신 유통망에서 줄 수 있는 보조금을 이통사의 15% 이내에서 줄 수 있도록 제한했다.
단통법의 가장 큰 성과로는 ‘선택약정’이 꼽힌다. 선택약정은 단말기 지원금을 받지 않는 이들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이는 ‘공시지원금 지급 규모’를 기반으로 한다. 당초 요금의 20%로 시행했으나 25%로 규모를 키웠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선택약정 가입자는 약 2600만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절반 수준이다.
정보에 어두운 사람이 공정하게 휴대폰 할인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단통법 역할이 컸다. 불필요한 휴대폰 교체 수요를 줄여 자원 낭비를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과거 파격적인 번호이동 보조금 탓에 2년에 한번 꼴로 휴대폰을 바꾸는 이들이 많았다면 법 시행 이후에는 교체 주기가 길어졌고, 중고폰 매매도 활성화됐다.
반면 부정적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이동통신 시장 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지적은 아픈 부분이다. 단통법으로 줄인 보조금 마케팅 비용을 이통사가 요금 경쟁 활성화로 전이되게 함으로써 가계통신비를 낮추겠다는 의도였으나 실제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통신비 인하 경쟁보단 비용 절감으로 이익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는 평가다.
2014년 이통3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1조6000억원 수준이었다면 2021년에 4조원을 넘겼다. 2022년에는 4조3835억원, 지난해에는 4조4967억원으로 추정된다. 3년 연속 4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이룬 셈이다.
단말기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법 개정
정부는 선택약정 제도를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요금할인을 받고 있는 소비자들의 혜택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고만 밝혔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은 "가입자의 절반가량인 2600만명이 이용하고 있다"며 "이 제도의 근거를 전기통산사업법에 넣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된 산식 등을 어떻게 구체화 할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법이 개정된다 해서 휴대폰을 싸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섣불리 낙관하긴 어렵다. 이미 안정화된 시장 상황에서 이통사가 다시 보조금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도 있어서다. 불법 보조금 대란 사태가 다시 성행할 수 있고, 이로 인한 이용자 차별이 속출할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휴대폰 보조금은 이통사와 제조사 모두가 부담하는데, 이 재원이 요금 경쟁보다 휴대폰 보조금에 쏠려 휴대폰 가격 인상을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은 "단통법의 제정 취지가 됐던 이용자 차별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기통신사업법 금지행위로 규제가 가능하다"며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예상되는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어 "다양한 중저가 단말기가 출시될 수 있도록 제조사 등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폐지 화두를 꺼냈지만 시행 시기가 요원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당장 4월 총선 이후 원구성, 국회 논의 등의 일정을 고려하면 연내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
이와 관련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통과 시기는 사실 미지수인 경우들이 많다"며 "정부의 의지를 발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im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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