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야 생태 전환 이뤄진다”····‘사회 생태 전환의 정치’

김종목 기자 2024. 1. 23. 0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회 생태 전환의 정치>(엮은이 임운택·김민정·강민형, 두번째테제)는 자본주의 이중 전환 문제를 다룬다. “2007~2008년 글로벌 경제의 대침체를 계기로 본격화된 21세기 자본주의의 전환은 2010년대 전 지구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이라는 이중 전환으로 구체화되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그린 뉴딜, 한·중·일은 각각 ‘한국판 뉴딜’, ‘중국 제조 2025’, ‘디지털 어젠다 2030’라는 이름으로 ‘전환’을 시도한다.

엮은이들은 책 서문에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민중의 대항운동이 지닌 해방적 잠재력에 주목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사회세력이 자신의 자율성을 구체화하기 전에 국가와 자본이 위로부터의 개입을 통해 오늘날 자본주의 이중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썼다. 자본주의 위기 상화에서 이중 전환은 지정학 갈등, 사회갈등, 생태전환 갈등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참여 학자들은 ‘사회적 지속가능성’과 ‘생태적 지속가능성’ 간 긴장, 갈등, 충돌에 주목한다. 클라우스 되레(독일 예나대 사회학과 노동사회학 교수)는 <‘집게발’ 위기의 함정: 노사 간 계급 갈등에서 사회-생태 전환으로>란 글에서 여러 갈등 양상을 다룬다.

되레는 국내 총생산(GDP) 기준 경제성장의 창출은 생태적 파괴를 불러오고, 사회 쇠퇴로 이어진다. 현상유지와 맞물린 경제성장은 화석 연료에 기초한 에너지의 활용 증가를 불러온다고 봤다. ‘경제’와 ‘생태’로 구성된 집게발의 위기는 “행성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아직 혹은 완전히 상품화되지 않았던 타자를 지속적으로 취득하고 개발하려는 충동은 결국에는 궁극적인 한계”에 부딪히면서 일어난다.

이 충동을 맘껏 푸는 이들이 부유층이다. 되레가 팀 고든과 미라 아레스팅의 2020년 연구 자료에서 인용한 통계를 보면, 1990년부터 2014년 사이 EU의 가장 부유한 1% 가구의 탄소 배출량은 5%, 상위 10%의 탄소배출량은 3% 상승했다. 같은 기간 동안 하위 50% 가구는 배출량 34%, 중위소득 가구의 경우 13%가량을 감축했다. “상위 계층에 속하는 부유한 가구들이 추동하는 사치재 생산과 소비 증가가 이와 같은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국가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 결과 때문에 가장 피해를 받는다. “달리 말하면 상류층의 낭비적 라이프 스타일이 지속 가능했던 것은 ‘지갑이 텅 빈’ 사람들의 임금이 내려가고 생계비는 올라서 허리끈을 졸라맸기 때문이다.”

승객당 탄소배출량 높은 전용기 수요는 코로나19 이후 증가하고 있다.전용기 이미지 검색 결과. 출처: 구글

되레는 기후변화를 막아 내고 자원 소모를 줄이려면 평등주의적인 분배 관계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을 통해 생태적 전환을 촉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전환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탈탄소화를 위해 생태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탄소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는 불리하다. “자신의 고용 안정과 지위를 중시하는 탄소 산업 노동자를 ‘생태적 반혁명’ 진영에 속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즉 ‘자본-노동’ 간 동맹이 맺어지기도 한다. 예나대 사회학과 연구팀이 갈탄 생산지였던 독일 라우지츠 지역의 생태전환을 둘러싼 갈등을 현지에서 연구했다. 광부들은 “자신들이 획득한 물질적·문화적 자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집념”을 가졌다. 갈탄 산업과 노천 채굴에 반대하는 이들 중 일부는 광부를 사회적 특권층으로 여긴다. 이들이 반목하는 사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극우 정당이 자신을 에너지 전환에 반대하는 유일한 정당이자 갈탄 산업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유일한 정치세력이라고 포장하며 표를 얻어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독일에선 주요 완성차업체의 직장평의회와 노조 지도부가 전기차 생산 이행을 두고 사용자 편을 들어 보수적인 산업정책을 지지하는 일도 생겼다. 노동자들은 “기존의 석유 연료를 사용한 엔진에 비해 탄소 배출이 적은 디젤차 생산이 지속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독일 금속노조는 기후변화 대안과 탈탄소화 목표를 전적으로 수용하지만, 조합원과 완성차 부품 업체 노동자는 이런 수용에 의구심을 품는다고 한다.

상황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독일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기후 보호를 위한 기후운동 활동가들과 연대한 사례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자동차 이용률 증가라는 특수 상황이 반영된 일이지만, 기후운동 그룹과 공공서비스노조가 “우리는 함께 주행한다”는 슬로건을 걸고 대중교통 확충 운동을 벌인 것이다. 되레는 이 연대와 동맹을 “연약한 묘목”으로 표현했다. 그는 “사회적/생태적 전환의 핵심 추진력”을 시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연대와 협동에서 찾으려 한다.

김민정(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원)도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을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 직면한 상황을 분석한다. 2021년 3월 당시 대통령 문재인이 보령 1·2호기 화력발전소를 방문해 ‘공정한 전환’을 언급하고 7개월 후인 10월 한국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에서 비정규직노동자가 자살한 일로 글을 시작한다. 김민정은 문재인 정부의 ‘기후대응기금’ 출처가 법인세와 부유세가 아니라 세제, 부담금, 배출권 거래제에서 나온다며 기후위기의 가해자인 기업과 부자들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식이란 점을 지적한다. 윤석열 정부도 “배출권 거래제 유상 할당 확대안을 검토하고 늘어난 수입은 기업의 감축 활동을 지원하는 선순환 체계 구축”을 내세운다. 이 또한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있는 기업에게 유리한 상황을 형성하는 기후 불의의 대표 사례로 김민정은 꼽았다.

김민정은 기후대응기금의 일부만이 노동자 지원에 쓰인다는 점도 지적했다.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폐지 석탄발전소 활용 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폐지되는 석탄화력발전소 30기 인원 모두가 직무 전환(일자리 전환)이 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최대 7935명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이중 비정규직인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는 5310명이다.

김민정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산업 재편의 특징을 두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 전환의 목표는 이윤율 회복을 위해 국가 경제와 산업 전반의 생산성 및 경제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는 이윤 경쟁력이 낮은 사업을 쉽게 축소 및 정리해서 수익이 나는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 구조조정의 적극 지원이며, 시장 친화적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노동자와 인민의 희생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직 위기에 처한 노동자의 자살이 그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엮은이 임운택(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은 책의 결론 격인 ‘자본주의 이중 전환과 계급정치의 전망’에서 “자연의 축에서 물질대사의 권력을 사용하는 가능성이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될수록 자본-노동 간 동맹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며 “생태 전환 투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계급 간 제로섬 게임은 생태학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결합하는 전환 목표를 위해 자연의 물질대사(생태친화성)와 임금 소득자의 힘을 결합해야만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생태학적으로 필요한 탄소 산업의 위축이 필연적으로 관련된 노동조합 조직력의 상당한 손실을 의미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임운택은 “제조 산업 노동자의 고용 및 임금을 보장하는 경우에만, 생태 전환 운동이 바뀔 수 있다. 분명한 점은 생태 전환 운동이 자본 권력과 대치하고 있음에도,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지속적으로 상실되어 간다면, 생태적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의 이행을 추진할 가능성이 점차 작아진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생태전환에 급진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는 여전히 절충적이다라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도외시한 계급운동은 있을 수 없고, 전환의 정치가 가지는 어려움도 그 과정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책은 이중전환을 주도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도 담았다. <제국의 충돌: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를 지난해 번역 출간한 훙호펑(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은 ‘글로벌 자본주의에서의 오월동주: 미-중 무역 전쟁의 기원으로서 기업과 첨단산업’에서 미-중 이중전환을 주도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분석을 담았다. 그는 전쟁이 미-중 자본가 간의 경쟁에서 촉발됐다고 말한다. “중국 경제가 2010년대 장기 간의 성장 둔화를 겪었을 때, 베이징 당국에서는 노동집약적 경제를 첨단기술 제조업 경제로 전환함으로써 경제성장을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혁신 시스템은 기대 이하의 효율성을 지니고 있었고, 중국 정부는 빠르고 용이한 기술 고도화를 도모하기 위해 해외 기술을 끌어오고자 했다. 이로 인해 미-중 간에 지식재산권과 기술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여 미국의 기업은 중국에 대해 점증하는 실망감과 환멸을 품게 되었다.” 그는 “미국을 희생시켜 중국의 기술력 제고를 통한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베이징 당국의 국가주의적 핵심 목표로 인해, 미-중 간 지식재산권 분쟁은 미-중 간 기업 분쟁의 핵심 사안이 되었다”고 했다.

미-중 간의 첨단기술 경쟁과 무역 전쟁은 과거 일본, 한국, 대만 등이 산업 고도화를 추구할 때 미국과 겪었던 갈등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홍호펑은 “지식재산권 보호제도는 이들 동아시아 국가의 자체적인 기술 혁신을 촉진시키고 동아시아 신흥국 경제가 첨단산업 강국으로 자리 잡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식재산권 보호제도를 구축하지 않은 채 시간을 번) 중국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중국 정부가 혁신 체계를 발달시키고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자생적인 혁신 체계의 미발달로 이어졌다”고 봤다.

책은 2022년 비판사회학회의 ‘21세기 자본주의의 디지털·그린전환과 사회의 미래’ 국제학술대회 발표 논문을 보완했다.


☞ “빅테크 기업의 시장 통제로 불평등 악화···국가가 노동자 보호해야”···훙호펑·베나나브·슈탑·임운택·강민형 좌담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211170700001

임운택은 “디지털·그린 전환이라는 자본주의 이중 전환은 노동과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큰 만큼 서구 진보학계에서는 뜨거운 주제인데 여타 국가와는 달리 이상하리만큼 다보스 포럼에서 정식화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슬로건에 취해있던 국내에서는 기껏해야 산업 4.0, 노동 4.0 (이마저도 최근에는 시들) 혹은 여전히 AI 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듯하다”며 “책이 토론의 불쏘시개로 할용되면 좋겠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