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주식은 사라는 의견만 있을까
전 세계 시가총액 1, 2위를 다투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도 다양한 이유로 매도의견이 나오는데, 국내 상장사에 대한 매도 리포트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분석에 따르면 2023년 4분기에 발표된 총 4021개 국내 증권사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매도의견은 단 2개뿐이었다. 2000개 중 1개도 안 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매도 리포트를 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국내외 환경이 급변해서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회사 내부에 안 좋은 뉴스가 있어도 매도의견은 없고 주식을 사라는 의견뿐이다.
실례로 지난해 주가조작으로 물의를 빚었던 영풍제지의 주가는 3171원에서 5만 4200원으로 1년 동안 무려 17배나 상승했지만 매도의견 리포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후 주가는 20분의 1토막이 나 금년 1월 22일 현재 2690원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작년 상반기에 떠들썩했던 이른바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도 비정상적인 주가 폭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전문가들의 소신 있는 리포트의 부재가 사태를 키우고 더욱 악화시켰다.
이 같은 '매수 일변도' 관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금융당국은 작년에 간담회도 열고 TF도 꾸렸다. 애널리스트의 성과평가, 예산 배분, 공시 방식 개선 및 독립 리서치 제도 도입 등을 통해 매도, 매수에 대한 소신 있고 균형 잡힌 보고서를 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선방안은 아직 검토 수준에 머물고 있고, 증권사의 '매수의견' 관행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2023년 3분기와 4분기를 기준으로 1년간 국내 증권사 리포트에서 매도의견 비율은 0.14%에 불과했으며, 이는 외국계 증권사와 100배나 차이가 나는 수치다. 개선의 의지를 갖고 출범한 금융당국의 TF가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는 사이 매수 일변도 관행은 금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되는 걸까. 그 이유는 대체로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기업과의 관계' 때문이다. 애널리스트가 회사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해 매도의견을 내면 해당 회사로부터 자료를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출입 금지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둘째는 '고객과의 관계'다. 리포트를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 해당 기업의 주주라 매도의견을 냈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들의 원성을 사게 된다. 회사의 실적이 안 좋아져서 주가가 떨어졌어도 애먼 애널리스트가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에 주가가 급등한 에코프로에 대한 매도의견을 낸 애널리스트가 출근길에 주주들로부터 협박과 봉변을 당한 일도 있었다. 또한 증권사 입장에서는 기업들을 상대로 영업도 많이 하기 때문에 해당 기업이 기업공개, 유·무상 증자, 회사채 발행을 할 때 참여하려면 고객을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상장기업은 잠재 고객이라 나쁜 정보가 담긴 매도의견은 금물이다.
셋째, 애널리스트 개인의 이해관계가 있다. 주요 경제매체가 매년 국내 연기금, 자산운용사, 은행, 보험사 등의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선정하는데, 매도의견을 내는 애널리스트는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투자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정보가 그리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넷째, 설사 리포트가 틀리더라도 회사로부터 특별히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드물다. 주식시장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 주주, 증권사, 애널리스트 모두 매수의견을 원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예상과 많이 빗나가도 여러 가지 시장 환경이나 외부 돌발변수 등으로 쉽게 변명거리를 만들 수 있고, 회사에서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그래서 매도의견을 내느니 차라리 그냥 해당 기업 보고서를 내지 않게 된다.
다섯째, 굳이 매도의견을 써야 할 인센티브가 없다. 매도의견을 제시해서 예상과 같이 주가가 떨어졌다고 해서 회사로부터 칭찬이나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보너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공정한 리포트가 발간되면 투자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만 정작 애널리스트에게 돌아갈 메리트는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리포트가 매수의견 일변도다 보니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애널리스트가 매수의견을 냈는데 해당 증권사가 매도를 주도하는 경우다. 애널리스트들이 주식을 거래하는 펀드매니저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고, 긍정적인 리포트를 기다렸다가 주가가 상승하면 매각해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펀드매니저도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애널리스트가 특정 기업 주식을 미리 매집한 뒤 과도하게 포장한 매수 리포트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규제를 강력하게 하고는 있지만 거의 모든 리포트가 매수인데 부정한 의도가 있더라도 잡아내기는 쉽지는 않다. 그래서 가끔 중·소형주에서 안 좋은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고 있지만 매수 일변도의 리포트 관행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리포트가 '매수' 의견이라고 해도 결과가 맞다면 비판하기 어렵다. 그런데 생각보다 맞다, 틀렸다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항상 매수를 외치다 보면 언젠가는 맞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매수 리포트를 낸 후 주가가 급락해도 급락한 후에 매수한 사람은 리포트 내용이 맞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거의 모든 주가는 아래, 위로 등락하기 때문에 일시적이라도 언젠가 한 번은 맞는다. 마치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격이다.
일정 기간으로 보면 주가의 방향이나 예상 주가를 맞춘 보고서는 많지 않다. 만약 리포트를 보고 주식을 사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이미 다 돈을 벌었을 것이다. 리포트는 어디까지나 투자 참고용이다. 그래서 맞고 틀리는 것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투자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투자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시장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었다는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재벌의 비정상적 지배 구조, 정부의 과도한 규제, 경직된 노동시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데 이견은 없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시장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잘못된 정보를 계속해서 시장에 제공한다면 아무리 혁신을 하고 규제가 철폐되어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정하고 균형 잡힌 시각의 리포트를 기대해 본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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