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지피는 푸틴 방북설, 對한국 레버리지도 노렸나? [fn기고]

이종윤 2024. 1.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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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북-러 간 작전적 수준과 전략적 수준 사이의 협력 진행 
 -北 최선희 러시아 방문 이어 푸틴 북 공식 답방 시기 조율 중 
 -북·러 국제사회 외면 무기 기술 거래는 유엔 안보리 와해 행위 
 -러, 한-러 소원한 원인은 우 전쟁 프레임 때문... 관계 회복 신호 
 -신냉전 구도 완화, 지정학 상황 변하면 북-러 약화 염두 포석 
 -러, 북·러 밀착 현시 통해 한국에 대한 레버리지 높이려는 셈법 
 -한국 북·러의 회색지대 전략 배제, 일관된 외교안보 정책 추진해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지난해 9월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시작된 북러 간 불법거래가 거침없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북한은 러시아에 100만 발 이상의 포탄과 탄도미사일을 제공했고, 러시아는 북한의 최초 군사 정찰위성 발사에 도움을 준 정황이 드러났다. 최근 북한이 발사한 ‘극초음속 IRBM’과 ‘해일’ 전력화에도 기술적 지원을 하고 있을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북러 협력이 일회성을 넘어 북러 고강도 밀착으로 심화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의 무기가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이 북러 간 작전적 수준의 협력이라면, 북한이 러시아의 전폭적 지원으로 군사정찰위성 능력을 본 궤도에 올린다면 이는 전략적 수준의 협력으로 규정될 수 있다. 현재 전반적으로 북한과 러시아 간에는 작전적 수준과 전략적 수준 사이의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협력 수준을 고강도 전략적 협력으로 끌어올리려는 셈법이 작동되는 듯하다. 지난 1월 14∼18일간 최선희 외무상이 러시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푸틴의 답방을 공식 초청했다. 러시아도 방북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정확한 날짜가 확정되는 대로 공지하겠다”며 푸틴의 답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시기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얼핏 보면 두 주권국가 간에 협력과 외교를 이어가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기에 대수롭지 않게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북한은 통상적인 주권국가의 행태와는 벗어난 일탈이 많다는 점에서 북러 밀월은 따져볼 지점이 적지 않다. 우선 러시아는 다른 주권국가를 무력으로 침공하며 우크라이나와 2년 가까이 전쟁을 이어가는 등 영토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는 1648년 이후 이어온 주권 기반의 ‘베스트팔렌 체제’와 2차 세계대전 후 작동되어 온 ‘규칙기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다. 북한은 한반도 정전체제가 가동되는 한반도에서 수많은 도발을 일삼으며 주권국가 한국에 대한 무력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NPT 체제를 교묘하게 역이용하여 핵무력을 완성함으로써 비확산 체제를 위반하고 있다. 현 국제질서와 규칙을 위반한 두 국가가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받는 신세가 되자 은밀한 거래를 통해 이를 상쇄하고자 나선 것이 북러 협력의 민낯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외교와 협력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금지된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받아서 전장에서 사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유엔 안보리 체제 와해 행위나 다름없다.

러시아가 이처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리스크까지 감수하며 북한의 무기를 받고, 그 대신 정찰위성 등에 기술적 지원을 제공해 주는 것은 그만큼 전장 상황이 어렵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것 말고는 없을까? 최근 러시아의 행태를 보면 북러 밀착이 단순 무기를 넘어 한국도 겨냥한 전략이 내재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지난해 12월 신임장 제정식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 회복은 한국에 달려 있으며, 러시아는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한러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같은 달 중순에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한국이 “비우호국 중 가장 우호적인 나라”라며 협력을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특히 한러 관계 소원의 이유가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만들어낸 프레임 때문이라며, 그 책임을 한국이 아닌 서방세계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현시점에서 판단해 보면 한국이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원하는 것보다는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강도가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최근 북러 밀착을 전략적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이러한 한러 관계 개선 의지의 ‘불균형성’에 영향을 주려는 러시아의 셈법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북한이 신냉전 구도를 기회 삼아 자신을 역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러한 신냉전 구도가 완화되거나 유라시아 지정학 상황이 변하면 북러 협력의 가치도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이 도래되면 핵무기만 보유한 후진국 북한보다는 핵무기만 없는 선진강국인 한국과의 협력이 자국의 이익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은 임시방편적 협력대상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지속 협력이 필요한 대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의미다. 나아가 러시아는 북한의 무기를 받는 것만큼이나 세계 5위의 군사강국이자 방산강국인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도록 외교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는 판단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한 것을 계기로 한국의 대(對)우크라이나 지원 규모와 강도가 변화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러시아는 한국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북한과 협력을 진행하기보다는 북러 밀착 현시를 통해 한국에 안보 리스크가 가중되는 구도를 창출함으로써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를 통해 한국에 대한 레버리지를 높이려는 전략적 셈법을 구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북러 밀착을 불법거래라는 ‘단순 방정식’이 아닌 외교적·전략적 레버리지 가동변수까지 포함된 ‘복합 방정식’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복합 방정식을 직시하려는 통찰이 없다면 북한과 러시아의 회색지대 강압과 간접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 이 함정에 빠지면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 ‘포괄’ 원칙 등 신냉전 구도 완화 기제,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 아키텍처 등 지금까지 체계적으로 추진해온 외교안보 정책이 일관성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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