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정의는 ‘포토라인’에 있는가[오늘을 생각한다]
2024. 1. 23. 05:30
“실망시켜 죄송합니다”,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겠습니다”. 이런 말과 함께 수사기관 앞에서 카메라에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피의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런 자리를 ‘포토라인’이라 부른다. 공직자이거나, 유명한 사람이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흉악 범죄의 피의자들이 수사기관에 출석하거나 출석 후 귀가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언론의 질문에 응대하는 관행이다.
포토라인은 늘 논란거리였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수사나 재판이 끝나지 않은 피의자를 수사기관이 공개 소환해 언론 앞에서 망신 줌으로써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상존했다. 여러 논란 끝에 검찰은 2019년 10월자로 피의자 공개소환을 전면 폐지했다. 다만 경찰과 공수처는 공개소환을 유지하고 있다.
포토라인이 범죄 피의자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피의자의 입장이란 것이 대부분 성실하게 수사받겠다는 것뿐이고, 그 앞에서 기자들이 여러 질문을 던지지만 대부분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뜬다. 화제가 되는 건 대개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의 표정, 태도나 특이한 행동, 장착 같은 것들뿐이다. 표정, 태도, 행동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 피의사실과 무관한 비난이 쏟아지는 사례도 많다. 요즘은 여기에 추측과 소문을 덧붙여 재생산한 가십 콘텐츠로 돈과 인기를 버는 이도 많다.
수사기관은 수사로 범죄를 입증하고, 범죄자는 법으로 단죄받으면 된다. 직무상 범죄를 저지른 공직자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한 피의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할 몫 이상의 사회적 비난거리가 돼선 안 된다.
최근 배우 이선균씨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 역시 경찰로부터 공개 소환됐고, 포토라인에 섰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았고, 고개 숙여 사죄했다. 사망 이후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 피의자를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포토라인에 세워 소득 없이 망신을 주는 행위가 타당한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반복됐다. 사실 포토라인 이슈는 공개 소환과 떼놓을 수 없다. 수사기관이 소환 일정을 언론에 알리지 않으면 포토라인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결국 포토라인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시작된 문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관계자’발로 누가 무슨 혐의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고, 어떤 진술을 했는지 공공연히 언론에 ‘단독’ 딱지를 달고 보도되는 일이 관행이 된 지 오래다. 대개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몰래 흘린 것들로 엄연한 ‘피의사실 공표’다. 피의자를 망신 줘서 기선을 제압하고 여론의 힘으로 수사를 밀어붙이거나, 피의자의 반응을 간 보려는 속셈이다. 공개 소환이나, 피의사실 공표나 모두 수사의 빈틈을 여론으로 메꿔보려는 수사기관의 구태다.
수사기관은 수사로 범죄를 입증해야 하고, 범죄자는 법으로 단죄받으면 된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돼야 할 직무상 범죄를 저지른 공직자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한 피의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할 몫 이상의 사회적 비난거리가 될 까닭이 없다. 유명인을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 주는 일이 범죄 예방이나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경찰서 문 앞이 아니더라도 진실과 정의를 밝힐 장소는 많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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