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집값" 서울 떠난 30대 약사 엄마…'최연소 이장님' 된 사연

이승주 기자, 김지은 기자 2024. 1.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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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원15리에서 주민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윤다이 신임 이장(37)./사진=독자제공


경북 포항시 남구에 최연소 이장이 등장했다. 2살 아들과 7살 딸을 키우고 있는 올해 37세 윤다이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9일 오천읍 원15리 신임이장으로 위촉됐다. 오천읍 50개 마을 이장들 중 유일한 30대다.

윤씨는 서울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하고 서울의료원에서 약사, 서울시에서 약무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그런 윤씨가 돌연 포항으로 떠난 이유는 살인적인 서울 집값 때문이었다. 매년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전세금을 보며 그는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고향인 포항시 오천읍으로 내려가 제2의 인생을 사는 게 더 안정적일 것 같았다고 한다.

오천읍 원15리는 포항시 중에서도 젊은 마을에 속한다. 지난해 이곳에는 1700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원1리에서 분리됐다. 윤씨처럼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도 많다. 지난달 기준 원15리 인구는 1791명이었다. 30~40대는 805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한다.

30대 약사 엄마, 어떻게 최연소 이장님됐나
지난해 12월 포항 오천읍 원15리의 한 아파트 단지 내부에 걸린 '이장 공개 모집' 현수막./사진=윤다이 이장 제공

대부분의 마을은 주민들끼리 워낙 가깝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이장을 뽑고 그 다음 행정 기관에 위촉 신청을 한다. 하지만 신생 마을인 원15리는 이웃끼리 아직 교류가 많이 없어 지난달 이장을 공개 모집했다.

윤씨는 동네에서 느낀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이장에 도전했다. 그는 "마을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대부분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었다"며 "나 같은 젊은 사람들은 어디에 의견을 내면 좋을지 막막했다. 이장을 공개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이거다' 생각했다"고 했다.

채용 과정은 서류 평가와 면접으로 이뤄졌다. 면접관 5명은 처음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젊고 약사인데 왜 이장을 원하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윤씨는 이장으로서의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원15리 마을에 사는 한 엄마로서 아이들의 등굣길 환경부터 초등학교 배정 문제, 환경 문제 등에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윤씨는 "인근 초등학교는 통학 거리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매번 걸어서 학교를 가야 하는데 거리에 상가도 적고 공사장도 많아서 안전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아파트 단지 뒤쪽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악취가 넘어 오는 문제도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안했다. 30대 엄마가 마을 이장이 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격 소식을 듣고 난 뒤에는 뿌듯함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주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 반응도 뜨겁다. 젊은 또래 부부들은 "이제 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청년과 노인이 함께 더불어 사는 마을
포항 오천읍 원15리의 모습. /사진=독자 제공

윤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소통이다. 그는 주민들끼리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야 마을 발전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 안에 마을회관 등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다"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세대 간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청년들 역시 오프라인 회의에 적극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말해줘야 알 수 있다"며 "온라인 채널도 좋지만 연말에 시 의원들이 모이는 행사에 직접 모여서 의견을 말하면 문제가 빨리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기성세대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서는 "청년들과 기성세대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며 "그럴 때마다 '뭘 그걸 가지고 그러느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걱정과 고민을 털어 놓으면 서로의 어려움을 잘 헤아려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윤씨는 다음달 9일 첫 이장 회의를 앞두고 있다. 아직은 두려움 반, 설렘 반이라고 한다. 윤씨는 "이장은 주민과 행정 기관을 연결하는 소통의 다리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들과 청년, 노인이 모두 잘 사는 동네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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