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 곰이 있다는 얘기는 다 거짓말이오"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이란과 튀르키예 국경의 한 시골마을에서 9일째 체류중이다. 이 시골마을은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끊을 때부터 정혼자를 두는 전통과 미신이 지배하는 곳이다. 파나히 감독은 여기서 은거하는 척 사실은 영화를 찍고 있는데 2Km 반경의 촬영장에는 조감독 레자가 폰과 줌으로 연결돼 있고 그의 지시대로 영화를 찍고 있는 중이다. 파나히는 이란 정부에 의해 출국이 금지돼 있고 영화 제작도 금지돼 있다. 자파르 파나히는 현재 몰래 영화 <노 베어스>를 찍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영화를 찍고 있는 자신도 찍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직접 출연도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얘기를 정리하면, 파나히 감독은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얘기(메이킹 필름)를 기본 설정으로 현재 촬영중인 영화 얘기를 거기에 얹히고 중첩 시킨다. 그래서 이 영화 <노 베어스>의 흐름은 처음엔 영화 속 영화가 나오고 중간에 영화 밖 영화가 나온다. 마구 혼재돼 있다. 일종의 액자식 구성이 진행되다가 현실의 이야기, 그러니까 영화가 아닌 파나히가 처한 시골마을의 현실로 서사가 튀어 나간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명백하게 짜여진 시나리오처럼 보인다. 어느 순간 뭐가 뭔지, 어느 게 영화이고 어느 게 현실인지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영화 속 영화에서는 박티아르라는 남자와 자라라는 이름의 여자가 튀르키예로 밀입국을 시도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처음에 이 얘기는 파나히가 배우를 써서 촬영하는 진짜 영화처럼 느껴진다. 한편 영화 밖 영화, 곧 현실에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고잘이라는 이름의 여성과 남자 솔두즈 커플이 처한 위기의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는 자신의 증언이나 혹은 자신이 갖고 있는 증거물(우연찮게 찍은 사진)에 따라 두 남녀가 일종의 명예살인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마을의 촌장에게 자신이 증언하지 않을 권리와 자유가 있음을 얘기하려 한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혁신적인 영화 <노 베어스>는 결국 '국경=경계'의 의미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자파르 파나히는 실제로 두 나라의 사이인 국경에 가 있다. 그 와중에 그는 진짜 영화와 가짜 영화, 곧 허구와 현실 사이에서, 그러니까 그 경계에서, 양쪽을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 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어느 것이 영화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그 구분과 경계가 애매하다.
영화는 뒤로 갈수록 그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데 그건 명백히 감독이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자파르 파나히는 테헤란에 있을 때 정부와 싸우면서 줄곧 표현의 자유, 그러니까 말할 자유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작 이 시골마을에 와서는 말하지 않을 자유, 침묵의 자유를 얘기하려 한다. 그 고민의 실체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 놓여 있는 경계 같은 것이다. 진실을 얘기하면 사람이 다치고 거짓을 얘기하면 그동안 이어 왔던 삶의 모토가 훼손된다. 튀르키에 국경 마을에서 탈출을 위해 불법여권을 구하고 있는 여인 자라는 연인인 박티아르를 놔두고 자신만 먼저 떠나야 하는 상황(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파나히 감독에게 화를 낸다. 당신은 해피 엔딩을 찍으려 하지만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고 소리친다. 자신이 그동안 투옥과 고문 추방을 견뎌 온 대가가 이것이냐며 이건 '말이 안 된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얘기한다.
이쯤 되면 영화 속 영화의 배우들인 줄 알았던 박티아르와 자라 ①두 남녀는 진짜 현실의 인물이고 ②그 둘은 실제로 국경을 넘어 이란을 탈출하려고 하고 있으며 ③자파르 파나히가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 있지만 ④그걸 마치 꾸며진 이야기처럼 극화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두 연인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사실이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 확실해 보인다. 자파르 파나히는 이런 점에서 꽤나 천재적인데, 영화같이 현실을 찍고 현실처럼 영화를 표현하는 방식, 그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야 말로 지금껏 나왔던 모든 영화 서사(敍事)의 구성 방식을 완벽하게 뒤집는 것이다.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인 자라가 처하게 되는 '마지막 상황'은 실제가 아닐 것이다. 영화는 비현실적인 얘기인 척 사실은 현실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데 주력하는 예술이다. 세상의 진실은 직설 너머에 있을 때 더욱 뚜렷하게 보이곤 한다. <노 베어스>는 바로 그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란에서는 강경 보수 성향의 성직자 출신 에브라힘 라이시가 대통령된 이후 반정부 시위가 잇따랐다. 히잡 착용 의무화 이슈가 시위를 촉발시켰지만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이 종교 규율 문제 역시 결국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의 시위로 이어졌다. 강고한 탄압이 이어졌고 많은 사람이 투옥됐다. 고문과 채찍질이 자행됐다. 그렇다면 왜 라이시였을까. 오바마 시절 이뤄냈던 핵 폐기 합의를 트럼프가 헌신짝 버리듯 폐기한 이후 이란 역시 급격하게 강경 보수로 전환됐던 것이 원인이 됐다. 이란은 신정(神政)국가이고 보수화 되면 당연히 이슬람 율법이 강화된다. 히잡 문제가 단순하게 히잡 문제가 아닌 이유이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지난 2010년 이란 당국에 의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이슬람 공화국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죄목으로 20년간 출국이 금지되고 가택연금상태에서 영화 제작 연출이 금지됐으며 심지어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금지된 상태이다. 영화 <노 베어스>는 자신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뚫고 끝까지 영화를 만들려는 감독의 투혼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재앙에 가까운 현실의 상황이 새로운 영화의 기법을 탄생시켰다는 점은 아이러니이자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란 정권의 억압과 탄압이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기량을 높여주고 있고 그의 천재성을 오히려 돋보이게 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서 자파르 파나히는 현자(賢者)처럼 보이는 어느 노인으로부터 이런 충고를 듣는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하시오. 거짓이 아니라고 맹세를 하고 거짓을 말하시오. 도시는 늘 부패한 정부가 문제이고 시골은 항상 미신이 문제인 곳이오. 저쪽 길로 가시오. 거기에 곰이 있다고 하지만 곰은 없소(no bears). 다 우리를 겁주려고 만든 얘기일 뿐이외다. 두려움을 만들면 권력을 휘두르기 쉬운 법이오."
테헤란에서 큰 우주의 싸움, 곧 정치민주화 투쟁을 하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시골마을에서 작은 우주의 싸움, 두 남녀의 연애 문제를 둘러싼 마을의 갈등에 휘말린다. 테헤란과 시골마을, 큰 우주와 작은 우주, 민주주의의 문제와 젊은이들의 치정 문제는 사실 동전의 앞 뒷면이다. 하나를 풀기 위해서는 또 하나를 풀어내야 한다. 둘의 문제는 변증법으로 이어져 있다. 영화 <노 베어스>는 그 모든 걸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는 곰이 없다. 그거 다 만든 얘기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를 구하기 위해서는 곰이 있다는 그 길로 과감하게 들어서야 한다. 자파르 파나히는 경계를 넘는다. 그의 영화는 시대를 넘는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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