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 아베의 유산... 천장 찌른 日증시, 잘 나가는 이유

김은정 기자 2024. 1. 23.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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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만에 최고가… 왜 잘나가나

22일 일본 증시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평균이 전날보다 1.6% 오른 3만6547엔으로 마감했다. 버블(거품) 경제기였던 1990년 1월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다. 닛케이평균은 올 들어서만 9.2% 올라 주요국 증시 가운데 가장 많이 올랐다. 1989년 12월 기록한 역사적 고점(3만8915엔) 돌파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래픽=김현국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가 승승장구하는 배경으로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엔저 같은 거시적 원인뿐 아니라 일본 기업들의 주주 친화 정책을 중요하게 꼽는다. 일본 기업들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 노력이 증시를 밀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주가 띄우자” 日 기업들의 분투

작년 4월 도쿄증권거래소는 3300여 상장사에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 미만인 기업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공시하라”고 요구했다. PBR은 주가(시장가치)를 순자산(장부상 가치)으로 나눈 수치로, 1이 안 된다는 것은 회사의 시장가치가 장부상 가치만큼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도쿄거래소는 “주기적으로 (주가 제고 방안) 이행 여부를 홈페이지에 공시할 것이며 끝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장에서 퇴출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당국의 압박에 일본 기업들은 주주 친화 정책을 쏟아냈다. 미쓰비시와 캐논은 작년 6월, 각각 3000억엔(약 2조7000억원), 1500억엔(약 1조3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고 미쓰비시UFG, 미쓰이스미토모 등 대형 금융 그룹도 작년 11월 조(兆) 단위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내놨다.

그래픽=김현국

도요타그룹은 비효율적으로 묶여 있는 돈을 성장 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작년 11월 자신들이 최대 주주인 자동차 부품 업체 ‘덴소’ 지분 7000억엔(약 6조원)어치를 팔아 전기차 생산 확대에 쓰기로 한 것이다. 같은 달 일본 에너지 기업 이데미쓰 고산은 ROE(자기자본이익률) 목표치를 기존 8%에서 10%로 높였다. 배당금 확대 행진도 이어져 지난해 일본 상장사의 주식 배당액은 역대 최고인 15조7000억엔(약 142조원)을 기록했다.

◇뿌리는 10년 전 아베노믹스

적극적인 민관 합작으로 ‘만년 저평가’ 꼬리표를 떼는 일본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도쿄거래소는 지난 15일 “대형주 중심의 프라임 시장 상장사 1656곳 중 49%가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거나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상장사 1800곳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2022년 말 51%에 달했던 PBR 1 미만 기업 비율은 작년 말 44%로 떨어졌다. 미래에셋증권 최진아 ESG 애널리스트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로 인해 창출될 ‘알파’를 기대하고 일본 주식 매수를 확대했다”고 했다. 도쿄거래소는 해외 투자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내년 3월부터 1600여 프라임 시장 상장사에 결산 정보 영문 공시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그래픽=김현국

일본 기업 변신의 뿌리를 아베노믹스(아베 전 총리의 경제정책)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2013년 6월 아베 총리는 ‘일본재흥전략(JAPAN is Back)’을 통해 일본공적연금(GPIF)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스튜어드십 코드)를 강조했다. 기업과 투자자 간 대화를 늘려 공동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자는 ‘가치 협창(協創)’ 가이던스도 내놨다. 이런 선행 작업이 있었기에 작년 도쿄거래소의 PBR 개선 요구가 기업들에 잘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세제 혜택 확대로 개인 투자도 촉진

올해부터 시행된 신(新)NISA(일본 개인저축계좌) 제도도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ISA는 한 계좌로 예·적금은 물론 주식·채권·펀드까지 투자할 수 있는 데다 수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만능 통장’으로 불린다. 일본은 30년 장기 불황을 겪으며 투자에 소극적으로 변한 일본 국민들의 증시 투자를 촉진하려고 NISA의 혜택을 올해부터 대폭 늘렸다. 연간 투자할 수 있는 금액 한도를 120만엔에서 3배인 360만엔(약 3200만원)으로 높였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 가계의 현금성 자산은 1117조엔(약 1경83조원)에 달한다. 이 중 일부만 주식시장으로 유입돼도 자본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SMBC닛코증권은 신NISA가 순조롭게 정착하면 매년 2조엔(약 18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일본 증시에 유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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