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용사가 천안함장으로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46용사 앞에 다짐합니다. 적이 도발하면 그곳을 적들의 무덤으로 만들고 단 한 명의 전우도 잃지 않고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2010년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폭침됐을 당시 작전관으로 근무했던 박연수(41) 중령이 22일 신형 호위함 천안함 함장에 취임했다. 천안함 생존 용사가 폭침 5050일 만에 지휘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날 경기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취임식을 가진 박 함장은 해군을 통해 “천안함 피격 이후 군 생활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는 것이 먼저 간 전우들이 나에게 남겨준 사명이라 생각하고 바다를 지켜왔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북한은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의 해상 사격, 수중 핵무기 체계 시험 주장 등 군사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현재의 안보 상황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북한은 최근 NLL에 대해 ‘불법·무법’이라며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이라고 했다. 북한은 NLL을 인정하지 않고 이보다 남쪽 ‘서해 경비계선’부터가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1000t급이었던 초계함 천안함(PCC)은 지난해 2800t급 최신 호위함(FFG-Ⅱ)으로 13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신형 천안함은 과거와 비교해 대잠 능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됐고 각종 유도탄 및 해상 작전 헬기도 탑재할 수 있다. 지상 타격도 가능하다. 이날 취임식에는 이성우 천안함 유족회장과 천안함 46용사 유가족, 최원일 전 천안함장 등이 참석했다.
박 함장은 2006년 해군 학사사관 101기로 임관 후 참수리-276호정 부장, 천안함(PCC) 작전관, 고속정 편대장, 진해기지사령부 인사참모 등을 지냈다. 그는 천안함 피격 당시 전우들 목숨을 구하려고 목숨을 걸었다. 해군 관계자는 이날 본지에 “박 함장은 폭침 당시 피격 직후 배가 직각으로 완전히 기울었던 상황에서 함교 당직자 7명 전원을 외부로 빠져나오도록 했다”며 “당시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도착한 고속정에 옮겨 탈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자원했다가 바다에 빠져 실종될 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함장은 이날 2함대의 천안함 46용사 추모비를 참배하면서 “적이 또다시 도발하면 전우들의 몫까지 더해 백 배, 천 배로 응징해 원수를 갚겠다. 천안함 46용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천안함 46용사와 고(故) 한주호 준위, 그리고 연평해전, 연평도포격전에서 목숨 바쳐 서해 바다를 지킨 모든 해양 수호 영웅들의 고귀한 희생에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가족은 그가 다시 천안함에 타게 된다는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는 “(아내가) 처음에는 다시 천안함 함장이 되었다고 하니 걱정도 많이 했다. 그래도 남편의 결심이니 응원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그 역시도 천안함 폭침 이후 전역을 고민했다. 하지만 먼저 간 전우들을 생각하며 계속 배를 탔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5월 천안함 취역식에 참석하면서 참전 장병들에게 ‘다음 천안함장으로 보직되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천안함이 아닌 다른 함정에서 함장 근무를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도 했다.
우리 해군에는 특정한 배의 함장직에 장교가 지원하도록 하는 제도는 없다. 보직심사위원회가 함장이 될 배를 결정한다. 다만 해군은 “천안함 전사자들과 참전 장병들의 희생, 헌신, 명예를 드높이고 부활한 천안함을 잘 이끌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천안함 음모론을 펴는 이들에게 해군이 ‘천안함 폭침 북한 소행’임을 명확히 하는 의미도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박 함장은 ‘본인에게 천안함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평생 이름 앞에 붙어 있고 또 붙어 있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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