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인은 숯 넣어 와인 데우는 주전자를 썼다

허윤희 기자 2024. 1. 2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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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가 말하는 2000년 전 폼페이 유물 관람법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 '폼페이 유물전' 전시장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폼페이의 매력은 작품 안에서 도시의 삶을 통째로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릇과 항아리를 보면 그 안에 담겨 있었을 빵과 와인이, 벽화와 전등에선 폼페이 사람들이 즐겼던 왁자지껄한 파티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거죠.”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 ‘폼페이 유물전-그대, 그곳에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미술사학자 양정무(57)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00년 전 고대 로마인들의 생생한 삶과 어우러진 폼페이 작품을 한국에서 즐길 기회”라고 강력 추천했다. ‘한국의 곰브리치’라 불리는 그는 이번 전시의 감수를 맡았고, 오디오 가이드도 녹음해 실감나는 해설을 들려준다. 관람객들은 “배우가 정해진 대본을 읽는 일반적인 오디오 가이드와 달리, 입담 좋은 전문가가 그리스·로마 신화와 당시 폼페이 생활상까지 풍부하게 설명해주니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양 교수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온 이번 출품작 중에서 제가 가장 주목하는 건 프레스코 벽화”라고 했다. 지방 경제의 중심지였던 폼페이에는 부를 누린 로마인들의 고급 주택이 가득했고, 집의 내부를 신화의 한 장면, 풍경 등을 담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했다. 그는 “요즘 주택에서 벽지를 쓰는 것처럼 그들은 프레스코 벽화를 썼다. 벽체에다가 얇은 회반죽을 바르고, 채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넣는 기법”이라며 “폼페이가 발견되면서 고대 그리스·로마의 회화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비로소 명확히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우리나라로 치면 강릉보다 작은 도시에 약 2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어요. 화산이 덮치면서 상층부는 날아갔지만, 30m 화산재에 뒤덮여서 나머지는 완벽하게 남아 있었던 거죠. 이 도시는 서기 79년 8월 24일에 그대로 멈춰버린 겁니다.” 그는 “1748년 우연히 발견돼 발굴이 시작됐는데 아직도 3분의 1은 땅속에 묻혀 있다”며 “‘폼페이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체계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놀랄 만한 자료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했다.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인다. 양 교수에 따르면, 입구에 놓인 청동 조각상 ‘앉아 있는 헤르메스’의 얼굴은 로마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얼굴과 흡사하고, 폼페이에서 발견된 대리석 조각상은 대부분 그리스 시대 작품을 로마인들이 다시 제작한 것들이다. 우윳빛 나신(裸身)이 눈부시게 빛나는 ‘포토스’를 가리키며 그는 “몸은 완전히 S(에스)자 곡선으로, 어깨에 두른 망토는 직선으로 떨어지게 대조시켰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몸을 보여주는 데 굉장히 열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양정무 교수가 '폼페이 유물전' 전시장 입구에 놓인 '앉아 있는 헤르메스' 청동 조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독일의 문호 괴테는 1787년 3월 폼페이를 방문한 후 “세상에는 수많은 재앙이 있었지만, 이토록 후세에 즐거움을 가져다준 재앙은 드물 것”이라고 썼다. 괴테는 특히 아름다운 등잔에 매료돼 “천장에 매달았던 램프가 좌우로 흔들리면 더 즐거웠을 것”이라 상상했는데, 괴테를 경탄케 한 ‘걸이식 청동 등잔’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양 교수는 “연구 결과, 폼페이인들은 등잔에 기름만 넣은 게 아니고 향까지 넣었다. 그 시대에 이미 ‘아로마 세러피’를 즐겼던 것”이라며 “겨울에 와인을 데우는 청동기 ‘사모바르’ 같은 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인생을 즐겁고 럭셔리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사가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대리석 조각·프레스코 벽화·청동 조각·장신구·사람 캐스트 등 127점을 선보인다. 5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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