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15] 1월의 달력
식탁에 앉은 남자가 양쪽 얼굴로 술과 음식을 동시에 먹느라 바쁘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1월의 상징 야누스다. 서양식 세시풍속에 따르면 1월은 먹고 마시는 연회의 달이다. 그 옆에서는 알몸을 한 젊은이가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서 양손에 병을 쥐고 푸른 초원에 물을 붓는다. 황도 12궁 별자리 중 1~2월에 걸쳐 있는 물병자리다. 그리스 신화에서 물병자리의 주인공은 올림포스에서 신들에게 음료를 따르던 미소년 가니메데라고 한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물병자리가 나타날 즈음 우기가 시작되어 이 물병이 물의 신 엔키의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달력 페이지에 해당 월의 온갖 상징을 세밀하게 그려 넣고, 여백마저 화려한 수풀과 꽃 장식으로 가득 채운 이 책은 중세 프랑스 필사본의 정수 ‘베드퍼드 시도서’다. 1410년경 잉글랜드의 베드퍼드 공작이 당대 파리 최고의 서기와 삽화가를 고용해 브루고뉴 공작의 딸 앤에게 결혼 선물로 만들어 줬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뒤로 세월이 흐르면서 페이지가 더해져 정확한 제작 연도와 작가들을 구분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건 베드퍼드 공작 부부가 1430년 12월 24일, 막 아홉 살이 된 조카이자 국왕 헨리 6세에게 이 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다는 사실이다. 태어나보니 백년전쟁의 한가운데 있던 헨리 6세는 생후 9개월에 왕이 되어 잠시나마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왕좌를 거머쥐었다가 둘 다 빼앗긴 채 생을 마감한 비운의 인물이다.
책은 헨리 6세보다 훨씬 운이 좋았다. 헨리 6세 이후로도 프랑스 왕 앙리 2세를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 왕과 귀족들 사이를 두루 누비며 주인을 바꾸다 1852년 브리티시 도서관 소장품이 되어 만인의 경탄을 받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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