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선수가 없어진다”는 구기 종목

박강현 기자 2024. 1.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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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6일 경북 경주시 황성공원 축구공원에서 열린 2023 전국 전국초등학교 축구리그 시도대항전. 경기도대표와 경남A대표팀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경기대표팀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걸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전국 시.도 초등학교에서 선발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출전한 대회다. /뉴스1

저출생으로 사회 곳곳에서 빨간불이 켜지고 있지만, 이미 이 위기를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구기(球技) 종목으로 대표되는 스포츠다. 스포츠에선 사람이 직접 뛰어야 한다. 어찌 보면 ‘대체 불가능성’의 정점에 있다. 키오스크와 같은 무인 정보 단말기나 인공지능(AI) 기술로 이들을 대신할 순 없다.

그런데 점점 선수가 없어진다. 최근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서 초·중·고·대학 등록 선수 현황을 확인해보니 이른바 ‘4대 종목(배구·농구·축구·야구)’ 가운데 야구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에선 전부 선수층이 쪼그라들었다. 통계 수집이 시작된 2005년과 2023년을 비교해보니 배구 약 150명, 농구 400명, 축구 8500명이 사라졌다. 팀 수십~수백 개가 ‘증발’해버린 셈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축구의 상황이 가장 심각할 것 같지만, 축구 등록 선수의 모수(母數)는 1만~2만명대를 유지한다. 학교 밖 외부 클럽에서 훈련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반면 2000명대를 간신히 지키고, 외부 클럽도 없다시피 한 배구·농구계에선 “키 큰 순서대로 망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구기 종목 중 진입 장벽이 비교적 높은 것이 배구와 농구다. 키가 일단 커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농구는 신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라는 명언이 있지만, 이는 명언일 뿐이다. 지난달 만난 한 고교 배구팀 감독은 “키를 보고 아이들을 이 종목에 입문시켰다. 근데 사람이 없다”며 “팀 유지를 위해 아무나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살얼음처럼 얇아지는 선수층은 자연스럽게 경쟁력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프로팀 감독들은 부쩍 “선수들 기본기를 다시 다 가르쳐야 한다”는 고민을 자주 토로한다. 남자 농구와 배구는 각각 1996년 애틀랜타·2000년 시드니 대회 이래 올림픽을 구경한 적이 없고, 여자 농구와 배구도 올해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한다. 애초에 사람이 없는데 천재가 나올 리도 만무하다.

현재 학교 운동부를 구성하는 학생들은 그래도 한 해 40만명 정도 태어나던 시기의 아이들이다. 근데 작년부터 20만명 선도 위태롭다. 당장 10년 뒤엔 단순히 사람이 없어 강제로 문 닫을 팀들이 수두룩해 보인다. 많아야 아기 한두 명 낳는 세상이다. 바늘구멍으로 여겨지는 스포츠에 자녀 인생을 걸 부모가 앞으로 얼마나 될까. 한국 스포츠는 예정된 재앙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스포츠는 한낱 ‘공놀이’에 불과할 수 있다. 생산 가능 인구나 병력이 줄어드는 것에 비하면 배부른 고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세계적 반열에 올랐던 우리 스포츠 자존심이 이런 방식으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계속 경고해야 관심을 갖고 대책이 나올 것이다. 지금이 한국 스포츠 전성기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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