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되려면 필수” 이어령 한마디에 세운 한국 첫 출판 박물관

유석재 기자 2024. 1.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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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37]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삼성출판박물관 내 ‘또 다른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이 사진기 앞에 섰다. 85년 세월 동안 출판인, 박물관장, 고서 수집가, 문화유산 지킴이 등 여러 직함을 지니게 된 그는 “책을 좋아해서 시작한 인생 역정이 다른 문화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졌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어떤 문화 행사에서 실크해트를 쓰고 코트를 입은 노신사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들어오는 걸 본다면 ‘이거 중요한 행사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는 김종규(85) 삼성출판박물관장.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과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도 맡고 있다. ‘문화계 대부(代父)’ ‘마당발’ ‘프로 참석러’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그는 삼성출판사에 60년간 몸담고 이끌어온 한국의 대표적 출판인이다.

서울 구기동 삼성출판박물관에 마련된 김 관장의 사무실은 또 하나의 박물관 같았다. 온갖 조각, 그림, 불상, 성모상, 흉상, 글씨, 도자기, 가구가 가득한 방은 보물 창고 같았다. 그는 “값나가는 것보다도 내 인생의 보물이라 할 만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고 했다.

◇‘횃불을 밝히고 돌아와 서자’는 4·19 詩

1960년 4월 19일, 동국대 경제학과 3학년생 김종규는 학우들과 함께 경무대 앞에 있었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 의거에 그도 나섰던 것이다. 지금껏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배웠는데 그 원칙이 무너진 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너무 심해 일단 물러나자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그의 다음 차례로 경무대 앞에 도착한 학우들이 총탄을 맞았다.

김종규 관장이 1963년 4·19 3주년을 맞아 쓴 시 ‘24시에 불태우고 0시에 서자’의 시화.

4·19 목포동지회장이 된 그는 3년 뒤 시(詩)를 하나 썼다. ‘정녕 24시의 낡은 풍토를 불태우고/ 0시에 엄엄한 횃불을 밝혀/ 다시 돌아와 서자’고 했다. 이 시는 시화(詩畵)의 모습으로 지금도 그의 사무실에 걸려 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공격 대상은 3·15 부정선거의 주범들이었지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었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그분은 스스로 하야해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30만부가 팔린 1964년 ‘한국야담전집’

전남 무안 출신으로 목포상고를 졸업한 김 관장은 책과 무척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다. “형님(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 회장)이 목포에서 서점을 운영하셨어요. 덕분에 책방 안에서 먹고 뒹굴며 온갖 책을 읽으면서 지낼 수 있었죠. 다른 애들이 책 한 권 사 보기 힘들었을 때 복이 터진 셈이었어요.”

그는 1964년 형이 창업한 삼성출판사 일을 도왔다. 국민소득이 100달러 남짓했던 가난한 나라에서 과연 누가 책을 사 볼까? 그러나 형은 ‘그래도 책을 읽고 싶은 갈증이 사람들에게 분명히 있고, 출판은 장차 한 나라의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는 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1964년 출간돼 30만 부가 팔린 삼성출판사의 ‘한국야담전집’.

이때 출간한 기념비적 저작이 10권짜리 ‘한국야담전집’이었다. 1권 고구려편 ‘부여 궁중의 기(奇)소년’부터 10권 이조편 ‘한음과 오성’까지 우리 문화 콘텐츠 수백편을 집대성했다. 30만부가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형님 말씀이 맞았구나!” 이후 삼성출판사 상무이사, 대표이사, 회장을 거치면서 ‘조선총독부’ ‘토지’ ‘세계문학전집’ ‘제3세대 한국문학’ 같은 대표 전집들을 출간했다.

◇이어령·게오르규와 함께 촬영한 사진

김 관장이 지닌 수많은 사진 중에서도 유독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있다. 1974년 ‘25시’를 쓴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방한했을 때 이어령(1934~2022) 전 문화부 장관과 셋이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삼성출판사가 1972년 월간 ‘문학사상’을 창간했을 때 이어령 장관이 편집주간이셨죠. 문인, 학자, 교수, 행정가의 종합 세트면서 천재인 분이었어요.”

이어령은 1989년 초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2000년대까지 박물관 1000개는 있어야 하고 출판 박물관은 필수”라고 말했다. 평소 고서(古書) 수집에 힘써 ‘새 책 팔아 헌책 산다’는 말을 듣던 김종규 관장은 이 말에 크게 고무됐고, 1990년 대한민국 첫 출판 전문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의 문을 열었다. 국보 1점, 보물 11점을 포함해 모두 10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개관식 때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만파식적 소리가 들린다’는 이 장관의 축사를 듣고 김 관장은 펑펑 울었다고 한다.

1974년 ‘25시’를 쓴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방한했을 때의 사진. 왼쪽부터 게오르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당시 ‘문학사상’ 편집주간), 김종규 관장.

최근 그는 ‘문화유산 지킴이’로도 업적을 쌓고 있다. 2007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된 뒤 서울 이상 시인 옛집, 전남 벌교 보성여관을 비롯해 여러 근대유산의 보전을 이뤄냈다. 50년 전 ‘서울 변두리 집 두 채 값’이라던 본인 소장 ‘가례집람’을 재작년 원소장처인 돈암서원에 기증해 화제를 모았다.

구상 시인, 중광 스님, 다도(茶道)의 대가인 효당 최범술 등 한국 문화계의 주요 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웠던 김종규 관장은 숱한 문화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도맡는 ‘축사의 달인’으로도 불린다. 이어령과 게오르규가 찍힌 사진에 그가 있듯, 여러 행사의 사진 어딘가엔 그가 등장하기 일쑤다. 많을 땐 하루 7~8곳에서 축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과 동선을 매번 꼼꼼히 체크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행사가 어떤 상황에서 치러지는 것인지,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진실되게 알고 적절한 상찬을 해 줘야 한다.” 그러면서 문학계와 공연계, 미술계와 영화계처럼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문화계 윤활유’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시골 출신인 내가 ‘코리아 뮤지엄 마피아 보스’라는 농담 섞인 소개를 받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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