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20] 비웃는 얼굴로 돌아보라
1970년 3월 31일, 일본 학생운동 전공투(全共闘) 적군파(赤軍派) 조직원들이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후쿠오카로 향하던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했다. 이들은 김포공항에 비상착륙했다가, 사흘간 협상 끝에 탑승객들을 석방하는 대신 야마무라 신지로 운수성 정무차관을 인질로 태우고 평양으로 날아갔다. 공산혁명의 국제 기지를 북한에 건설하려고 그랬다는 건데, 대동강에서 물고기나 잡는 등 시시껄렁하게 살거나 기죽은 채 죽었다. 그들이 자기들 정체성에 대해 남긴 말이 “우리는 내일의 조다”이다. ‘내일의 조’는 야부키 조라는 소년이 주인공인 권투 만화다. 나는 이 유치함이 국적 불문 ‘운동권’이라는 정신세계의 중요한 기조라고 본다.
1972년 2월 19일 일본 나가노현에 있는 아사마 산장에서, 혁명 좌파와 적군파가 결합한 연합적군 조직원들이 산장 관리인의 아내를 인질로 삼고 10일간 경찰과 대치했다. 혁명 좌파는 총포 가게에서, 적군파는 은행에서 강도질을 한 뒤였다. 이들이 진압되는 과정은 TV로 생중계됐는데, 9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경찰은 산장 부근에서 남자 8명 여자 4명 총 12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총화(總和)’라는 사상 교육 중에 살해당한 거였고, 죄목에는 ‘연애질’도 있었다. 그 시절 일본 학생운동 유파에서는 이런 일이 많았다. 그들을 하나로 만든 건 ‘과격성’과 ‘황당무계(荒唐無稽)’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일본 국민에게 환멸을 주었고, 적군파는 소멸됐다.
1980년대 초 한국 운동권 역시 폭력으로 치달았고, 계속 그대로였다면 비슷한 행로를 걸었을 공산이 있다. 이걸 교화해 새로운 투쟁 노선을 지시한 것이 ‘한민전’이다. 1987년 민주화 시위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대신 손뼉을 치게 하고 ‘대통령 직선제’라는 모토로 주사파 운동권에게 선량한 가면을 씌워준 것도 한민전, 곧 북한이었다. 후일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민노당을 장악, 합법적으로 국회에 진출하라고 지도한 것도 북한이었다. ‘아직 대중화되지는 못한’ 이런 팩트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누구라도 충분한 증거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2015년 3월, 마크 리퍼트 미 대사가 개량 한복 아저씨에게 칼로 테러를 당했을 때, 나는 아, 이제 386 운동권이 정치 문제를 넘어서 ‘사회문제’가 됐구나 하고 생각했다. 전공투가 한국 운동권보다 괜찮은 것은, 민주주의자라고 ‘뻥’을 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 요도호 납치범들의 무기는 전부 장난감 모조품이었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 운동권이라는 가짜 총에 협박당해 납치됐다. 개량 한복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은 채 대통령의 손을 강압적으로 잡고 고함을 지르는 ‘구석기인’을 비장하게 대해주면 안 된다. 비웃어야 소멸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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