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평화와 통일이다
임지현 교수의 1월 17일 자 조선 칼럼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는 상당 부분 수긍이 되는 예리한 분석이다. 그러나 이를 장기적, 세계적 차원에서 고찰하면 두 가지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사회가 변한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평화와 통일은 남북한에 관한 한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급속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는 지역적 차원이나 세계적 차원에서 분화와 분열이 아닌 통합과 통일의 방향으로 변화를 거듭해 나가게 될 것이고 또 그리해야만 지속적인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차원의 공동체 형성이 바로 그 좋은 예다.
유럽은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인접 국가 간의 전쟁이 빈발했고 대규모 국제전의 발원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계 대전 종식 이후에 오랜 적대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한 유럽 경제 공동체가 단계적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 과정은 구성국 간 관세 철폐, 상품·자본·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회원국 국민들의 EU 내 자유 왕래 실현 등으로 한 나라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왔다.
게다가 통합 화폐 유로의 채택, 유럽 시민들이 직선한 대표들로 구성된 유럽 의회를 비롯해서 유럽 정상 회의, 유럽 각료 회의, 유럽 집행위원회, 유럽 사법재판소, 유럽 중앙은행 등의 설립이 이루어졌다. 비록 영국이 탈퇴하고 아직도 미흡한 점이 있으나 높은 수준의 경제 통합을 이루고 유럽 합중국 형성이라는 정치적 통합까지도 바라보고 있어 EU 구성 국가 상호 간에는 전쟁 발발을 상상하기조차 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필자가 1984년 통일원 장관 자격으로 브란트 전 서독 총리와 한 시간에 걸친 단독 면담을 할 때 브란트가 평화를 위해서는 유럽 통합이 절실하다고 역설하는 것을 들으면서 공감한 바가 있는데 한반도도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독일 통일 전 동독과 지금의 북한은 판이하기 때문에 몇 가지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햇볕 정책의 부정적 측면을 직시해야 한다. 동독은 서독을 무력 침략한 일이 없고 핵무기 개발도 하지 않았고 세습 족벌 독재 체제를 구축한 바도 없으나 북한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북한 핵무기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 햇볕 정책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주장의 허구성은 햇볕 정책 실시 이전에도 북한이 제2의 남침을 감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한미 군사 동맹과 주한 미군의 존재 때문이었음을 외면하고 햇볕 정책이 전쟁을 방지했다는 선전이야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둘째로 북한 정권에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 정권은 비핵화 공동 선언을 포함해 여러 차례 우리 측을 속여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남북한 간 어떠한 협정을 체결하든 우리 측의 군사적 억지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좋지 않은 협정은 아예 협정이 없는 상태보다 못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유럽이 통합과 통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모든 구성 국가들이 민주국가이고, 민주국가가 아니면 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남북한이 통합을 이루기 어려운 이유는 서로 이념과 체제가 판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한이 통일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국가로 변해야 한다. 평화적인 통합은 서로 닮아야 하거니와 더 못살고 있는 북한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한국을 닮아야 한다.
요컨대 부강한 통일 민족 국가의 형성이라는 민족적 대의와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원은 평화와 통일이어야 한다. 통일 전 서독이 동독과의 관계를 특수한 관계로 규정하여 외무부와 별개로 ‘내독 관계성’을 설치 유지한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생팬’ 그 시절 영광 다시 한 번... 정년이 인기 타고 ‘여성 국극’ 무대로
- 러시아 특급, NHL 최고 레전드 등극하나
- 김대중 ‘동교동 사저’ 등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 국어·영어, EBS서 많이 나와... 상위권, 한두 문제로 당락 갈릴 듯
- 배민·쿠팡이츠 중개 수수료, 최고 7.8%p 내린다
- 다음달 만 40세 르브론 제임스, NBA 최고령 3경기 연속 트리플 더블
- 프랑스 극우 르펜도 ‘사법 리스크’…차기 대선 출마 못할 수도
- [만물상] 美 장군 숙청
- 檢, ‘SG발 주가조작’ 혐의 라덕연에 징역 40년·벌금 2조3590억 구형
- 예비부부 울리는 ‘깜깜이 스드메’... 내년부터 지역별 가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