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찬바람 불자… “싼값에 리튬·니켈 사자” 배터리 광물 확보전
호주 최대 리튬 광산업체인 ‘필바라 미네랄스’의 최대 주주가 이달 초 중국 기업에서 호주 연기금으로 바뀌었다. 264조원을 운용하는 호주 연기금이 지분을 추가 매입해 중국 기업을 제치고 최대 주주(6.12%)에 올라선 것이다. 리튬 가격은 2년 전보다 7분의 1 수준까지 폭락했지만, 호주 연기금은 이번 투자에 대해 “리튬 가격이 사이클 바닥에 있어 투자 적기로 판단했다”며 “전기차 등 에너지 전환의 핵심 광물인 니켈, 코발트, 흑연에서도 ‘더 많은 기회’를 보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강한 한파가 닥쳤다. 하지만 ‘하얀 석유’로도 불리는 리튬 등 에너지·모빌리티 산업에서 핵심 광물 확보 전쟁은 오히려 가열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원유·가스·광물 등 에너지 분야에서는 수요가 둔화하면서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를 ‘자원 공급망 확보’를 위한 투자 적기로 판단하는 데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회사들이 뛰어들었고, 현대차, LX인터내셔널 등 국내 전기차·배터리 업계도 리튬 장기 공급 계약, 해외 니켈 광산 투자로 공급망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고금리,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로 배터리 광물 가격이 하락했지만, 장기적인 전기차 시장 전망은 흔들림이 없다”며 “가격이 하락한 시점은 공격적으로 자원을 확보해 공급망을 강화할 기회이기도 하다”고 했다. 다만 얼마나 자본력을 갖추고 장기 투자를 이끌어 갈 수 있는지가 투자 성패의 관건이다.
◇광물 가격 하락에도 장기 경쟁 치열
지난 18일 세계 최대 리튬 생산업체인 중국 간펑리튬은 현대차와 리튬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최대 전기차 메이커인 현대차와 글로벌 1위 리튬업체 간펑리튬 모두 최근 전기차 시장 둔화 영향을 크게 받는 기업인데, 시장에선 이번 계약을 두고 당장 현재보다는 미래를 내다본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간펑리튬은 계약을 공시하면서 “현대차와 상호 이익에 근거해 현재 리튬 시장을 충분히 고려한 협력”이라고 부연했다. 현대차는 이번 장기 계약으로 리튬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확보하면서 앞으로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배터리 제조사와 합작 공장에도 현대차가 확보한 리튬을 공급할 경우, 앞으로 수익 배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도 있다.
고성능 배터리에 투입되는 핵심 광물인 니켈 가격도 전기차 시장 여파로 19일 기준 t당 1만6036달러(약 2146만원)를 기록하며 2년 내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한파가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 기업은 꾸준히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 16일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 지분 60%를 약 1330억원에 취득하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여의도(290㏊)의 7배에 달하는 2000㏊ 규모 광산으로, 전기차 700만대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배터리 제조사 삼성SDI도 이달 캐나다 니켈 채굴 기업 ‘캐나다니켈’ 지분 9.7%를 약 1850만달러(약 245억원)에 인수했다. 앞으로 이 회사가 온타리오주에서 개발하는 니켈 광산 생산량 10%를 사전 계약한 금액에 구매할 수 있고, 협의를 통해 15년간 생산량의 20%를 추가로 공급받을 수 있다. 중국산 중저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대응해 삼성SDI가 중점을 두는 고성능 ‘하이니켈’ 배터리 공급망 강화 일환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니켈도 공급 과잉이 이어지면서 일부 폐광 업체도 나오고 있지만, 업계에선 배터리 산업 전반에서 옥석 가리기에 들어간 것으로 본다”며 “여전히 중국, 남미에 편중된 광물 공급망 다각화에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전기차 시장 둔화가 공급망 확보 기회로
배터리 업계는 최근 전기차 시장 둔화를 역으로 탈(脫)중국 공급망 구축의 기회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에코프로는 이달 초 ‘글로벌자원실’을 신설하고 기존 투자해 온 인도네시아 외 아프리카 신흥국까지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자원 부국(富國)이지만 기술력이 부족해 생산이 더딘 국가 진출도 논의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달 19일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리튬 세계 최대 매장국인 칠레에 리튬 가공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칠레 외국인 투자 유치 기관인 인베스트칠레는 “한국 기업들은 칠레의 방대한 반가공 리튬을 가공해 미국 시장에 공급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한국 기업이 칠레 공장을 운영하면 중국 의존도도 낮출 수 있고,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지급 요건도 충족할 수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몽골·카자흐스탄·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자원은 풍부하지만 선광·제련 기술이 부족한 국가와 기술 협력을 통해 광물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terview] “S. Korea’s leap to middle power hinges on fair distribution and growth” says the former PM
- [에스프레소] 그때 제대로 사과했다면
- [특파원 리포트] 디샌티스가 내친 功臣 품은 트럼프
- [백영옥의 말과 글] [380] ‘비교지옥’을 끝내는 적당한 삶
-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62] 스위스 아미 나이프
- A new dawn for Yeoseong Gukgeuk and its unwavering devotees
- “인간은 사회의 짐, 사라져”... ‘고령화’ 질문에 폭언 쏟아낸 AI챗봇
- 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9조2000억원 보조금 확정
- 러 반정부 세력 견제하려...강제수용소 박물관 폐쇄
- 한국야구, 일본에 3대6 역전패… 프리미어12 예선 탈락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