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맡겠다더니… 생산성본부, 하도급에 떠넘기고 수억 챙겼다

진중언 기자 2024. 1.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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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부실 용역’ 논란
한국생산성본부 본사 22일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생산성본부가 공공, 민간에서 수주한 용역 사업을 협력업체에 떠넘기고 과도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남강호 기자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최근 한국생산성본부(KPC)와 거래한 4~5년 치 용역 내역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생산성본부가 작년 4월 조달청 나라장터에 ‘소상공인 상품 개선 컨설팅 위탁 용역’을 수행할 업체를 뽑는 입찰 공고를 냈다가 돌연 취소한 것이 발단이 됐다.

생산성본부가 입찰 공고를 취소한 건 해당 컨설팅을 최초 발주한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생산성본부에 “문제가 있다”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임이 22일 확인됐다.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사업을 따낸 생산성본부가 ‘재하도급’ 업체를 구하려다가 ‘원청’의 항의를 받아 무산된 것이다. 이 밖에도 생산성본부가 공공기관이나 민간에서 수주한 각종 컨설팅 사업을 중소 업체에 헐값에 맡기고, 앉은 자리에서 수억원의 차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픽=양진경

◇협력 업체에 일 떠넘기고 수억원 챙겨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작년 3월 조달청에 ‘2023년 소상공인 상품 개선 컨설팅(온라인 홍보·KC 인증 등) 지원 산업 운영 대행’ 입찰 공고를 냈다. 5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는데, 생산성본부가 20억6800만원에 사업을 따냈다. 그런데 생산성본부는 불과 한 달 만에 같은 제목의 공고를 올려 하도급 업체를 구하려다가 무산된 것이다. 생산성본부 관계자는 “발주처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다소 오해가 생겨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린 입찰 공고를 분석해보니, 생산성본부가 협력 업체를 부리며 폭리를 취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생산성본부는 중소기업유통센터가 맡긴 온라인 홍보와 KC 인증 두 분야의 용역 업체를 뽑으면서 총 15억5100만원을 사업금액으로 제시했다. 하도급 업체를 부리며 아무것도 안 하고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받는 사업비(20억6800만원) 중 5억1700만원을 수익으로 챙기려 한 것이다. 중소기업유통센터 관계자는 “수년간 생산성본부가 진행한 사업 전반에 대해 감사를 진행 중이며, 추가로 문제가 발견되면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생산성본부가 2021년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수주한 다른 용역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생산성본부는 최초 입찰 시 전체 사업의 80%를 직접 수행하고 나머지 20%는 프로젝트를 공동 수행하는 중소기업에 맡기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사업 대부분을 협력 업체에 떠넘겼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생산성본부는 “사업 수행 비율을 바꾼 것은 발주처와 협의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부실한 감사 시스템, 조직 내부도 ‘엉망’

생산성본부가 정부나 민간에서 각종 사업을 따내고서 하도급 업체에 ‘갑질’을 하는 것은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국정감사 때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위원은 “생산성본부가 여러 대학교에서 수주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외주 업체에 재하도급 주면서 과도한 이윤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생산성본부가 총 4억7228만원어치의 컨설팅 프로젝트 20건을 수주해 60% 수준으로 재하도급 계약을 했다는 내용이다. 경기도의 한 대학은 생산성본부에 ‘교직원 인사 제도 개선’ 컨설팅을 2582만원에 맡겼는데, 생산성본부는 이를 하도급 업체에 1420만원에 맡기는 식이었다.

생산성본부가 외부 위탁 사업을 진행하면서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부실한 감사 시스템과 내부 조직 관리 실패 등이 꼽힌다. 1957년 설립된 생산성본부는 2013년부터 공공기관에서 해제됐다. 정부 예산을 받지 않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특별 법인’이라는 지위로 국정감사 대상도 아니고, 산업부도 산하 공공기관처럼 경영 상태를 점검하기 어렵다.

2022년 초 생산성본부 직원이 20대 인턴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터졌는데 제대로 징계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고위층의 인사 전횡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불만이 쏟아진다. 한 산업부 전직 관료는 “예산을 타서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사업 추진 과정이나 조직 관리에서 부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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