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48.1㎝ 투표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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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길이 48.1㎝인 비례대표 투표용지는 단연 화제였다.
올해 4·10총선에서도 40㎝ 넘는 투표용지가 등장할 것 같다.
61개 정당이 모두 비례후보를 낸다고 가정하면 투표용지 길이는 80㎝를 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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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첫째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치른 첫 전국단위 선거였다. 외신들은 “대통령선거 경선(미국)이나 지방선거(영국)를 연기한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은 ‘과학 방역’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실현한다”고 조명했다. 만 18세 고교생이 사상 처음으로 참정권을 행사한 것도 의미 깊다. 2019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이 선거 투표 가능 연령을 한 살 낮췄기 때문이다. 그 해 국내 유권자의 1.2%(54만8986명)가 만 18세였다.
길이 48.1㎝인 비례대표 투표용지는 단연 화제였다. 여야가 비례 의석(47석) 배분 방식을 ‘병립형’(정당투표율에 비례)에서 ‘준연동형’(지역구 의석이 많을수록 비례 감소)으로 바꾸자 수많은 군소·위성 정당이 출현했다. 당시 35개 정당이 비례 후보를 내면서 최장 투표용지가 탄생했다. 덕분에 개표는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투표지 분류기가 처리 가능한 길이(34.9㎝)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개표는 2000년대 평균 총선 개표시간(6.5시간)을 훌쩍 넘긴 다음날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올해 4·10총선에서도 40㎝ 넘는 투표용지가 등장할 것 같다. 선거제 협상이 언제 끝날지 몰라서다. 더불어민주당은 한때 병립형 회귀를 검토했다가 준연동형 유지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을 주장한다. 여의도에선 “여야 갈등이 심해 협상 여지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준연동형이 유지되면 투표용지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이낙연·이준석 신당 같은 제3지대 창당이 봇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50개다. 여기에 창당을 준비 중인 정치세력이 11개에 달한다. 모두 합치면 61개다. 정당 이름도 엇비슷하다. 대한민국당 대한당 새누리당 한나라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열린민주당 자유새벽당 통일한국당 한국국민당 더밝은미래당 미래당….
61개 정당이 모두 비례후보를 낸다고 가정하면 투표용지 길이는 80㎝를 넘게 된다. 반면 올해 도입된 신형 투표지 분류기는 길이 46.9㎝ 이내 투표지(34개 정당)만 분류할 수 있다. 35개 이상 정당이 후보를 내면 수개표가 불가피하다. 여야는 4년 전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명분으로 준연동형을 도입했다. 그래 놓고선 잉크도 마르기 전에 위성 정당을 만드는 꼼수를 썼다. 유권자가 4년마다 ‘투표지 피로 증후군’을 앓는 이유다.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아 더 서글프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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