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진화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노력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2024. 1.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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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새해에는 사자성어 하나 정도는 외쳐줘야 분위기가 산다. 누란지세(累卵之勢)! 이 사자성어만큼 인류의 운명을 적확하게 묘사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홀로세(Holocene)를 지나 인류세(Anthropocene)로 접어들어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의 생태적 운명은 억지로 쌓아 올린 달걀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1.5도로 억제하지 못한다면 사피엔스 문명은 더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2050년까지 전 세계 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탄소중립’)로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기후는 문명의 탄생과 성장에 최대 변수로 작용해 왔다.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사피엔스가 농경이 시작된 1만2000년 전까지 수렵 채집을 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빙하기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이었다. 7만4000년 전쯤 전 세계 사피엔스 인구가 2000명 정도로 줄어들어 멸종 직전까지 가게 된 것은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의 폭발로 인한 에어로졸이 햇빛을 가려 지구 평균 기온이 12도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7000년 전쯤 4대 고대문명이 탄생한 것은 간빙기 이후 5000년 동안 진행된 해수면 상승이 그때서야 비로소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기후와 문명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지구는 계속해서 뜨거워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명백히 인류에게 책임이 있고, 지속적인 해수면 상승, 생물다양성 감소, 식량 감소, 에너지 고갈 등을 통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러나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이라는 경고가 뜰 때를 제외하고는 위기에 대해 크게 각성하지 못한다. 대체 왜 이렇게 무딜까. 진화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뇌는 통계적 추이나 장기간의 변화가 아닌, 생존과 번식을 방해하는 ‘즉각적 위협’에 매우 민감하게끔 진화했다. 조상들은 먹구름이 다가오면 얼른 동굴로 피하면 그만이었지, 5년 후의 강수량 따위를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미래보다 현재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끔 진화하여, 마치 자신의 생애 동안 지구의 자원을 다 쓰고 죽을 것처럼 소비한다. 이러한 ‘진화적 관성’ 때문에 위기 앞에서도 참으로 태평했지만 최근, 심리적 불안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호주 산불로 희생당한 수억 마리의 동물들을 목격한 사람들, 해수면과 거의 같은 높이에 사는 섬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극심한 더위가 알코올 의존성과 자살률을 높이기도 하며, 자연재해가 잦은 지역의 어린이들은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환경 전문기자 로르 누알라는 ‘지구 걱정에 잠 못 드는 이들에게’를 통해 생태불안(eco-anxiete), 생태우울(dep ecolo)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생소한 용어지만,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 사이에서는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환경 파괴와 빈번한 자연재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치료하고자 모인 이들은 기후 위기를 ‘공중 보건이 직면한 심각한 위협’으로 정의했고, ‘생태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을 환자 취급하는 건, 눈앞에 보이는 걸 보이는 대로 말하는 사람에게 왜 보느냐고 나무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유네스코는 생물·문화다양성 보전과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활동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국의 생명다양성재단도 과학을 바탕으로 환경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설립되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지역에서 더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릴 때, 기후 위기라는 이 거대한 글로벌 이슈는 바로 나 자신의 문제로 변환될 것이다. 지난 50년간 우리는 풍요로워졌고, 지구는 딱 그만큼 파괴되었다. 이제는 지속 가능한 발전 말고 ‘지속 가능한 공생’을 계획해야 한다. 생태계와 함께 공생하는 인간(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으로 거듭나기 위해 ‘진화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화석연료 중심의 구조로부터,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신화로부터, 만물을 인간 중심적으로 변형하고 착취해 온 과거로부터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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