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86>복천동 79호묘 벽석에 새겨진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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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소망이나 염원을 어떻게 기록할까.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암각화 출토 예가 많지 않아 출토됐다는 것 자체가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 덕에 오늘날 우리는 동심원과 나선문 등이 새겨진 암각화를 마주할 수 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소망을 진중하게 아로새긴 암각화를 보며, 마음을 다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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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소망이나 염원을 어떻게 기록할까. 일기장이나 핸드폰 메모장에 쓸 수도 있고, 여러 사람에게 드러내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올릴 수도 있다. 소망·염원을 시각화해 기록하는 것은 그 소망을 이룰 강력한 동기가 된다. 시험을 앞둔 이의 책상 앞에 붙은 ‘나는 할 수 있다!’ 등 글귀가 좋은 예시이다.
이러한 행위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구석기시대부터 인류는 소망이나 염원을 시각화하여 기록했다.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는 구석기시대 후기에 그려진 동굴벽화가 남아있다. 당시 사람들은 동굴 천장에 매머드·들소·사슴 등을 그려놓고, 완벽한 사냥을 위해 그림을 보며 연습하거나 성공을 기원했다.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소망·염원을 시각화해 기록했다. 친숙한 부산 동삼동 유적 출토 사슴 그림 토기나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대표적이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인물상 동물상 도구상 등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신앙을 보여주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내용이 많다. 당시 사람들은 암각화를 새기며 사냥 당시를 회상하거나 큰 사냥감을 잡기를 기원하기도 한 것이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도 암각화가 확인된다.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암각화 출토 예가 많지 않아 출토됐다는 것 자체가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암각화는 복천동 고분군 79호 석곽묘의 벽석으로,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 암벽의 일부가 채석되어 유입된 것이겠다. 암각화가 새겨진 돌은 직사각형의 각진 형태이며, 그림이 새겨진 면은 비교적 판판한 자연면이다. 그림은 정면 중앙부 왼쪽에 5겹의 나선형 문양이 시계방향으로 표현되었고, 나선문 아래에 넓은
모양의 선이 좌우로 확장돼 있다. 우측 끝부분에는 작은 동심원 문양이 표현돼 있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해 좌우 그림이 명확히 판독되지 않으며, 제작기법은 쪼기와 일부 긋기를 사용했다. 동심원과 나선문 그림은 태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상상해 보자면 부산지역에 살던 어느 청동기인이 농경의 풍요와 생활의 안녕을 빌며 태양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 여러 개 동그라미를 자연 암벽에 암각화로 아로새겼을 것이다. 그 암각화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며 당대 사람의 태양을 향한 마음을 대변해 주었겠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오던 암각화는 복천동 고분군 79호 석곽을 만들 때 채석되어, 무덤 속에서 망자의 안녕을 빌어주게 된 것이다. 그 덕에 오늘날 우리는 동심원과 나선문 등이 새겨진 암각화를 마주할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올 한해 이루고 싶은 소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새롭게 떠오르는 해에 소망을 빌면서, 소망을 이루어나갈 수 있게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고, 다잡은 마음이 조금은 해이해질 수 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소망을 진중하게 아로새긴 암각화를 보며, 마음을 다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값진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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