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말 잘하는 이의 ‘희망 대기실’(巧言令色)을 경계하면서

경기일보 2024. 1.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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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철 ㈜탄소중립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

지난 가을부터 경기도 전역을 들쑤셨던 집권 여당의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가 막을 내리면서 소위 ‘김포·구리 서울편입특별법’은 자동 폐기의 수순을 밟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사람들의 한풀이식 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한 선거꾼들의 해코지가 또다시 갈등과 혼란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

말에 대한 역사적 교훈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친다. 진시황을 대면한 한비자의 첫마디는 ‘알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고,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충성스럽지 않은 것(不知而言, 不智 知而不言, 不忠)’이니 함부로 입을 놀리는 자는 마땅히 사형에 처할 것을 권했다. 그보다 앞서 공자는 논어 학이(學而)편과 공야장(公冶長) 편에서 ‘말을 교묘하게 잘하면서 낯빛을 꾸미는 사람 중에 어진(仁)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고 경고했다.

226개 기초지자체는 앞으로 1년 동안 대한민국과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탄소감축(2030년 40%)과 탄소중립(2050년)을 위해 지역이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무적 선택을 해야 한다. 반세기 이상 팽창과 개발이 지배해온 발전패러다임을 생소하기 짝이 없는 공존과 안전 그리고 지속가능성으로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지자체와 공공은 현안에 필요한 의견 수렴과 대안 마련보다 주어진 업무의 행정적 수행과 보고에 급급해 왔다. 이번에도 정부는 지자체의 계획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와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국가의 목표를 위해 모든 지역은 책임과 의무를 분담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곳은 더 많은 희생을 강요받을 수도 있고, 어떤 곳은 무임승차의 혜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6개 지자체는 국가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하나의 계획을 제출할 것이다. 결국 지역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혁신과 변화를 요구하지만 습관과 관행은 다가올 위기를 애써 외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선거철마다 반복해온 성장의 신화는 모두를 ‘희망의 대기실’에 가두고 다가올 위기를 외면한 채 카타르시스적 단순함을 강요해 왔다. 정치인을 자처하는 자들은 추수철 메뚜기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정의를 앞세워 비현실적 희망으로 유혹을 준비하고 있다. 반복되는 희망 고문 속에서 서울마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은 중요하지 않다.

탄소중립의 길은 삶의 조건을 바꿔간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이해충돌과 갈등을 내포한 현실적 전환의 길이다. 탄소중립은 목표치를 할당하고, 계획을 마련한다고 실현되지 않는다. 계획 수립은 목표 할당이 아니라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고 상향적 접근이 탄소중립 분야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전 지구적 시급성과 내 삶의 현실성이 부딪치는 지역 현장에서 국가적 가이드라인과 주민의 요구를 조절할 수 있는 공공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1년의 시간은 장밋빛 희망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성찰을 통해 모두가 할 수 있는 하나를 찾아내기 위한 선택과 집중의 시간이 돼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불씨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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