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블록체인과 지갑이 필요 없는 세상

소윤권 엔버스 대표 2024. 1. 2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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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권 엔버스 대표.

안타깝게도 최근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아내가 선물해준 소중한 지갑과 현금, 그리고 백화점 상품권이 아깝기 그지없었지만, 아까움은 순간의 탄식이었을 뿐 후속 대응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우선 전화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분실신고 한 다음에 재발행 절차를 진행하였고, 주민자치센터에 가서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와 재발급 신청을 한 다음 경찰서에 가서 운전면허증 재발급을 신청했다. 그 와중에 딱 하나뿐인 가족사진 원본도 지갑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나름 IT 기업을 이끌면서 디지털 최전선에서 있다고 자부했는데, 지갑을 분실해 보니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세상에 살고 있었다. 다시는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지갑이 필요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100% 지갑이 필요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잃어버린 신분증, 신용카드, 상품권, 사진, 그리고 현금을 다시는 분실하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신분증과 관련해서는, 현재 통신사 PASS앱을 이용해서 실물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에 대한 모바일 신분증 등록이 가능하다. 정부의 모바일 신분증은 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분증의 위·변조 및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신원증명(DID) 기술을 활용한다. DID란 'Decentralized Identity'의 약자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중앙기관 없이 자신의 신원을 증명하는 것을 뜻한다. DID로 신원을 인증할 경우, 신원인증에 들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사용자의 기기에 정보를 저장한 후 필요한 정보만 제출하는 방식으로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개인이 직접 정보 주권을 소유할 수 있다. 새로 발급될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은 무조건 모바일 등록을 할 계획이다.

신용카드는 애초에 삼성페이와 애플페이 및 각종 간편 결제 서비스가 활성화되기도 했거니와 심지어는 모바일 전용 신용카드도 발행되고 있기 때문에, 블록체인과 관계없이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실생활에서 실물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백화점 상품권과 관련해서는 지류뿐만 아니라 모바일 상품권으로도 수령이 가능하다. 최근 들어 NFT 기반 상품권·티켓 발행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지류 상품권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모바일 상품권도 NFT 기반으로 발행되고 전자지갑으로 전송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전자지갑만 있으면 상품권 보관 걱정은 필요 없어 보인다.

가족사진은 카카오톡 프로필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언제든 볼 수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전자지갑에서 불러올 수 있도록 NFT로 만들어서 보관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나만의 사진을 보고 싶다면 역시 SBT(SoulBound Token)가 답이다. SBT란 기존 NFT처럼 대체불가능하면서 교환이나 양도가 불가능한 토큰을 의미한다. 전자지갑만 있으면 충분히 볼 수 있다.

지갑 없는 삶에 가장 방해가 되는 건 역설적이게도 사용 빈도가 줄고 있는 현금이다. 간편 결제와 간편 송금으로 현금 사용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어떤 식으로든 지갑에서 현금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몇 년 안에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곧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통화의 상용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현재 한국은행을 포함한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과 분산원장 기술을 이용하여 결제시스템을 혁신하고, 화폐발행에 대한 투명성을 증대시키고자 CBDC 실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CBDC가 현금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고 있으면서도 사용 편의성이 높고, 기존의 현금이 분실위험이나 위조화폐 등의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CBDC는 현금을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전자지갑에 CBDC를 보관하고 있는데 굳이 번거롭게 현금을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을 테니까.

CBDC가 상용화되기 전까지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다시는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지갑 없는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DID와 NFT 그리고 전자지갑을 잘만 활용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록체인은 지갑 없는 세상의 핵심 요소다.

소윤권 엔버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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