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4] 육아, 희로애락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고등학교 교사 김혜인이 발달 지연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교사 김혜인] ‘우리 아이가 빠른 것도 있네.’
아이가 길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자 남편에게 온 답장이다.
이런 모습은 아이가 서너 살쯤, 대형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나 겪을 일일 줄 알았다. 아이는 생후 17개월 만에 터득했다. 이마를 바닥에 박기까지 한다.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6개월에 이미 알았다.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아기 쌀과자인 떡뻥을 먹은 날이었다.
아이는 길쭉한 떡뻥을 손으로 꼭 쥐고 아주 맛있게 먹었다. 주먹을 그대로 쥔 채 손 안의 나머지 것을 먹지 못하고 주먹만 연신 빨아댔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그런데 아이의 주먹을 펴서 안의 것을 꺼내 주려고 하자 이 녀석이 울면서 발버둥을 쳤다. 빼앗으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곧바로 다시 떡뻥을 줬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고 말 그대로 성질을 부리는 것이었다. 분이 풀리지 않는 듯 한동안 실컷 화를 낸 뒤에야 다시 먹기 시작했다.
떡뻥 사건은 그저 귀여운 에피소드였는데 어느새 걱정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생후 17개월 무렵이 되자 조금만 맘에 들지 않아도 드러눕고 화를 내는데, 그 이유가 짐작조차 안 갈 때는 정말 난감했다.
이날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갑자기 드러누워 울기 시작해서 날 당혹스럽게 했다. 달래려고 시도해도 바닥에 이마를 박고 발을 구르며 너무 울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안아 주어도 발버둥 치는 아이를 행여나 떨어뜨릴까 봐 온 힘을 다해 안아서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의 언어 발달이 느리니 전후 사정을 보아 아이가 우는 이유를 추측하고 해결하려 노력하지만, 그 짐작이 맞든 아니든 달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아이의 모습에 낮에는 화가 나고 밤에는 걱정이 되었다. 잠든 아이 곁에서 지쳐 있다가 멍투성이가 된 이마를 보자 슬픔이 밀려왔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계절이 바뀌듯 어느새 아이가 변해 있었다. 발달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누워서 발버둥 치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횟수와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꺄하하 소리를 내며 웃는 모습이 많아졌다. 크크케케켁 재미있는 소리도 낸다. 자동차를 이리저리 굴려보며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모습에 즐거워한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기뻐하며 발을 동동거린다. 나와 숨바꼭질을 하며 신나서 어쩔 줄 모른다. 덩달아 나도 유쾌한 웃음이 많아졌다.
치료의 효과인지, 그런 시기가 되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이가 손을 펴서 떡뻥의 나머지 부분을 먹을 수 있게 되었듯, 아이의 감정도 자라고 있다는 점이다. 감정이 더욱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예전에는 가만히 있거나 신기한 듯 쳐다보거나 크게 우는 게 전부였는데 점점 짜증, 서러움, 기쁨, 뿌듯함이 분명해졌다.
그에 따라 잔잔했던 나의 삶도 아이와 함께 희로애락에 빠져들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마음이 미어지게 아프고 너무 사랑스럽고 기쁨에 충만하다.
아이는 이제 떼를 쓸 때도 요령을 부릴 줄 알게 되었다. 조심히 드러눕다가 마지막에만 살짝 쿵 소리가 나게 한다. 더 이상 이마는 박지 않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뒤돌아 몰래 웃는다.
아이가 더 자라면 마트에서 장난감을 살 수 있음을 알 것이다. 갖고 싶은 장난감이 생기겠고, 자신이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면 엄마, 아빠가 창피해 하는 줄도 알 것이다. 나는 그런 아이 모습에 무척 화가 나겠다.
아이가 언젠가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누워 발버둥 친다면, 나는 멍투성이 이마를 보며 마음이 미어지던 날을 기억하겠다. 쉬지 않고 자라는 이 아이가 내게 보여주려는 또 다른 기쁨이 무엇일지 기대해 본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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