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 신입생’ 수백 명씩 들어올텐데… 대학들 “교수 태부족”[인사이드&인사이트]
융합인재 양성-전공선택권 보장… 교육부 인센티브에 수백 명 선발
이주호 “30%는 입학후 전공 선택”… 15년 동안 등록금 동결한 대학들
“20년차 교수 연봉이 기업 과장급… 학생 쏠리는 학과, 교수 못 구해”
● “융합형 인재-전공 선택권 보장 위해”
교육계에선 그동안 인공지능(AI), 바이오헬스, 양자역학 등 미래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는 첨단 분야에 융합형 인재가 필수적인데 현재 대학의 경직된 학사 구조로는 인재 양성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달라졌는데 대학 학사 구조는 수십 년 전 틀에 묶여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교육부에서 ‘무전공 선발’을 대안으로 들고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학생들이 충분한 진로 탐색 기회를 가진 후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찾아 진로를 설계하도록 하자는 의도도 반영됐다. 지금까지 수험생 중 상당수는 내신 등급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에 맞춰 대학이나 전공을 택하면서 자신의 흥미와 거리가 먼 학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중도에 좌절하거나 학업을 그만두기도 했다는 것이다. 현재도 재학 중 과를 바꾸는 ‘전과 제도’가 있지만 정원이 학칙으로 정해져 있다 보니 이동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수도권 사립대 20% 이상 뽑아야 인센티브
거점 국립대의 경우 무전공 선발 비율이 2025학년도 25%, 2026학년도 30%로 사립대보다 5%포인트 더 높다. 다만 정부가 정원을 통제하는 의대 등 보건의료와 사범 계열 정원 등은 제외하고 무전공 선발 비율을 계산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올해 대학혁신지원 사업비 8852억 원의 절반인 4426억 원을 정부 방침에 따라 무전공 선발을 확대하는 대학에만 인센티브로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 방침에 따라 한 학년 정원이 보통 3000명대 후반인 서울 주요 대학의 경우 내년도에 300명 안팎을 무전공 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는 기존 자유전공학부 123명을 포함해 약 400명을 무전공으로 뽑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고려대는 기존 자유전공학부 정원 95명에 200명을 더해 295명을 무전공 선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무전공 정원을 확보하는 방법도 학교마다 다르다. 성균관대는 학내 모든 학과의 정원을 균등하게 줄여 300명을 무전공 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양대는 자유전공학부인 한양인터칼리지를 신설하고 데이터사이언스학부 등 인기 학과 중심으로 정원을 감축해 330명을 무전공 선발하기로 했다.
● 대학 “자유전공학부 실패 되풀이 말아야”
대학들도 무전공 선발 확대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한다. 서울대는 교육부 방침이 공개되기 전 이미 중장기 발전 계획에 ‘입학 정원의 30%까지 무전공 선발을 확대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서울대 관계자는 “다양한 분야를 연결하고 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학의 현실이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하게 할 경우 취업에 유리한 학과 등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몰려드는 학생을 감당하려면 학과에서 교수 등 교육 인프라가 준비돼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학사 구조에서 갑자기 특정 학과의 교수진을 늘리거나 교육 인프라를 확충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이미 계열·단과대 등 광역 단위 선발을 하는 곳은 많지만 무전공 선발은 서울대, 한동대, KAIST 등에서만 해왔다.
예를 들어 서울 주요 대학이 매년 300여 명을 무전공 선발하고 입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보장할 경우 상당수가 AI나 반도체 관련 학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정원이 50명인 학과에 극단적인 경우 정원의 2∼3배나 되는 학생이 몰릴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학과별 정원 제한을 둘 경우 원하는 세부 전공으로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
무전공 선발을 각 대학의 자발적 선택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와 반발도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심화 교양교육 과정, 진로 지도, 학생 쏠림에 대비하려면 자유전공학부는 일반 학과·학부보다 훨씬 더 많이 손이 가기 마련”이라며 “2009년 많은 대학이 자유전공학부를 도입했다 폐지한 사례들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했다.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도입 당시 많은 대학이 폐지된 법대 정원을 자유전공학부로 운영했는데 서울대 외에는 주요 대학에서 거의 살아남지 못하고 폐지됐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각 대학에선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인기 학과 쏠림’ 현장이 과도하게 나타났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장 서울대에서는 현재 정원 123명인 자유전공학부가 내년 3월 출범할 서울대 학부대학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자유전공학부 재학생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학부대학으로 확대 개편될 경우 교수의 지도를 받거나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교육부 “문사철 교수도 융합과목 맡아야”
대학들은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학생을 가르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생이 몰리면 그만큼 교수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컴퓨터공학과 등 첨단 학문의 경우 국내 최상위권 대학조차 교수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5년 가까이 동결된 대학 등록금으로 인한 대학 재정난과 교수 처우 악화 때문이다. 서울의 한 상위권 사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쓸 만한 인재는 구글, 엔비디아 등에서 한국 돈으로 연봉을 3억 원씩 주고 데려가는데 연봉 1억 원 남짓인 대학에 누가 교수로 오려고 하겠나”라고 했다.
교육부는 대학이 교원 부족을 호소할 게 아니라 교원의 소속을 다양화하고 융합과목을 신설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전공 선발 확대 이후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전공자가 줄어든다면 교수들이 ‘철학과 AI 융합’, ‘철학과 반도체’ 같은 과목을 개설해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수 소속을 특정 학과나 학부로 제한하지 말고 복수 학과 또는 단과대로 넓히면 전공 분야 외 다른 전공과 결합한 융합과목을 얼마든지 강의할 수 있다”고 했다.
최훈진 정책사회부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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